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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인터뷰] 가천대학교 화공생명배터리공학부 윤문수 교수

다 쓴 배터리, 고성능 배터리로 되살리다, 공융염 기반 준액상 업사이클링 공정 개발

전기차와 에너지저장 장치 보급이 급증하면서, 폐배터리는 더 이상 버려야 할 물질이 아니라 순환시켜야 할 자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폐배터리를 고성능 소재로 재생하는 일은 까다로운 분리 정제 과정과 환경 부담이 큰 공정에 의존해 왔으며, 산업 현장에 적용하기엔 현실적인 한계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천대학교 윤문수 교수 연구팀은 기존 제조 장비와 호환되면서도, 성능은 오히려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업사이클링 기술을 선보이며 기술적 돌파구를 제시했다. 복잡한 공정을 거치지 않고도 폐배터리에서 고성능 단결정 양극재를 회수할 수 있는 ‘준액상 환경 기반 직접 재생’ 방식은, 배터리 제조 시스템에 실질적으로 적용 가능한 수준의 간결함과 효율성을 동시에 갖췄다. 이번 성과는 자원 순환과 고부가가치화를 함께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배터리 산업 전반에 깊은 시사점을 던진다. 에너지 기술의 지속 가능성을 구체화하는 이 업사이클링 접근은 미래 배터리 생태계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손쉽게 고성능 소재로 재생시키는 업사이클링 전략 제시

리튬이온전지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명을 다한 폐배터리의 처리 문제는 자원 확보와 환경 보호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양극재는 전체 배터리 원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고부가가치 소재이며, 여기에 함유된 니켈, 코발트, 리튬 등 전략 금속들은 대부분 특정 국가에 매장되어 있어 국내 자원 자립과 공급망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수명을 다한 배터리로부터 핵심 원소를 추출 및 가공해 신규 배터리 소재 합성에 활용하는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 기술 개발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현재 산업계에서 실용화된 재활용 기술은 습식제련(hydrometallurgy)과 고온 야금(pyrometallurgy) 방식으로 대표되지만, 이들 공정은 구조를 파괴할 뿐 아니라 다량의 폐수 및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등 환경적 부담이 크다. 더구나 재활용 이후에도 양극재를 다시 처음부터 합성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공정으로, 지속 가능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병목을 돌파하기 위해 최근에는 ‘직접재활용(direct recycling)’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직접재활용은 기존 소재의 구조를 유지한 채 핵심 금속 원소를 보충·재조성해 새로운 배터리 소재로 되살리는 방식이다. 물 사용이 거의 없어 폐수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고, 기존 양극재 생산 공정과의 호환성도 뛰어나 친환경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높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재 기술은 입자 간 반응성과 혼합 균일도를 높이기 위해 고에너지 볼밀(High-energy Ball-mill)을 수십 시간 운용해야 하며, 수백 g 단위로 확장하는 데 기술적 제약이 존재한다. 이러한 한계는 산업적 성숙도를 저하시켜 직접재활용의 상용화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해법으로 공융염 기반의 직접재활용 전략을 고안했다. 목표는 기존 장비와 공정 내에서 적용 가능한, 빠르고 효율적인 업사이클링 방식이었다. 공융염을 활용한 저온 용융 반응과 원심 혼합 기술을 결합함으로써, 에너지 소비는 줄이면서도 고부가가치 소재를 회수할 수 있는 혁신적 공정의 가능성을 열었다.
“배터리 재활용 기술의 본질은 환경성과 경제성 모두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구조 파괴 없이, 고부가가치 양극재로 재생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실제 양산 공정에 쉽게 도입될 수 있는가, 폐배터리를 다시 고성능 소재로 되살릴 수 있는가가 관건이었죠. 이 과정에서 낮은 온도에서도 용융이 가능한 공융염 시스템과, 원심 혼합 기술의 조합이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우리가 찾던 방향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공융염 기반 준액상 공정으로 단결정 니켈리치 양극재 재생

연구진이 개발한 공정의 핵심은 공융염 기반의 ‘준액상 반응 환경’을 조성해, 사용 후 리튬이온전지의 양극재를 고성능 니켈리치(Ni-rich) 단결정 양극재로 직접 재생하는 데 있다. 이때 사용된 염 조성은 LiOH, LiNO₃, Ni(NO₃)₂·6H₂O를 특정 몰비로 혼합한 것으로, 약 183℃의 낮은 온도에서 공융점이 형성되어 입자 간 마찰만으로도 수 분 내에 용융 상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준액상 전이는 다결정 형태의 사용 후 NCM523(LiNi₀.₅Co₀.₂Mn₀.₃O₂) 입자를 해쇄(비교적 약한 힘으로 응집한 재료를 분산)하고, 공융염 전구체와의 접촉 면적을 극대화해 이온 확산을 촉진한다. 이 과정에서 리튬 및 니켈 이온이 입자 표면 전체에 균일하게 침투하고, 재결정화를 유도해 고른 조성을 갖춘 Ni-rich 구조가 형성된다. 이러한 공정은 입자 내부까지 빠르게 이온이 확산되며, 일반적인 고체상 반응과 달리 조성 불균일성 및 표면 결함층(rock-salt phase)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도 함께 갖는다.
이를 통해 기존의 NCM523 소재를 고성능의 NCM811(LiNi₀.₈Co₀.₀₈Mn₀.₁₂O₂) 단결정 양극재로 업사이클링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초기 쿨롱 효율 약 87.3%, 방전용량 198mAh/g, 700mAh급 파우치셀 실험에서 300사이클 이상 88% 이상의 용량 유지율을 기록하며 실제 셀 환경에서도 높은 안정성을 입증했다.
“고에너지 볼밀링 없이도 마찰 기반 공정만으로 6~12분 내에 이온이 균일하게 확산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후 열처리 단계에서는 조성 회복과 구조 안정화가 동시에 이뤄졌고, 결과적으로 단결정 Ni-rich 양극재로 재생할 수 있었습니다. 실험에서는 300사이클 이상 셀 안정성을 확인했고, 공정도 간결해 상용화 가능성 측면에서 매우 유의미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실용화 측면에서도 이 기술은 전기차 및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회수된 폐배터리를 고성능 전기차용 배터리 소재로 다시 활용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단결정 Ni-rich 양극재는 고에너지밀도 셀에 적합하기 때문에, 항공 모빌리티 등 고부하 응용분야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더불어 현재의 양산 공정과 호환되어, 별도 설비 없이도 도입 가능한 산업적 이점이 강조된다.
다만, 상용화를 위해서는 공정 규모의 확장(scale-up)이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현재는 100g 단위 실험에서 재현성을 확보한 상태이지만, 이를 kg 단위 이상으로 확대하면서도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려면 반응성 제어 및 공정 자동화 기술이 요구된다. 또한 다양한 폐배터리의 조성 편차와 오염 조건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전구체 조성 기술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우수신진연구자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수행되었으며, 연구 성과는 2025년 4월 9일 ‘Energy & Environmental Science’ 온라인판에 게재되었다.

기술적 통찰을 이끈 양극 소재 연구의 궤적

2025년 연구성과를 가능하게 한 기반에는, 윤 교수가 제1저자로 참여한 2023년과 2021년 두 편의 논문이 자리하고 있다. 두 연구는 각각 소재 합성과 표면 안정화라는 상이한 연구 축에서 진행되었지만, 고에너지밀도 배터리의 수명 향상과 공정 효율 개선이라는 공통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수행되었다. 특히 2023년 연구는 이번 성과의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응용 기반을 제공했고(Nature Energy 2023년 3월 30일 게재), 2021년 연구는 고용량 양극재의 열화 억제와 관련된 독창적인 접근을 통해 배터리 성능 향상 가능성을 넓혔다(Nature Energy 2021년 3월 2일 게재).
먼저, 2023년 연구는 공융 조성(eutectic composition) 원리를 바탕으로 단결정 양극재를 저비용으로 합성하는 공정을 다룬다. 연구팀은 리튬수산염(LiOH)과 리튬질산염(LiNO₃)을 공융 조성을 통해 녹인 후 전이금속 전구체와 혼합하고, 이를 800℃ 이하의 열처리로 단결정 입자화하는 기술을 구현했다. 이 공정은 기존 다결정 소재에서 흔히 발생하던 입자 균열과 전해질 반응 문제를 최소화하며, 고안정성·고수명의 단결정 양극재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해당 기술은 NCM811 같은 니켈리치 계열은 물론, 기존에는 고온 장시간 열처리에도 단결정화가 어려웠던 고망간계 리튬·망간리치(LMR) 양극에도 적용 가능함이 입증되었다. 특히 리튬 함량이 높은 고전압 소재에서도 수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단결정 입자 합성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용화 가능성을 높였으며, 전지 테스트 결과에서는 다결정 소재 대비 약 12% 향상된 수명 유지율과 30% 이상 개선된 저항 증가율을 보였다. 이러한 성능 개선은 전기차 배터리의 열화 문제와 안전성 확보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전진으로 평가된다.
“이 실험은 1년 반 넘게 실패를 반복한 끝에 얻은 결과였습니다. 항상 파우더 형태만 나왔는데, 어느 날 공융염을 한번 써보자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처음 본 점토 같은 형상을 분석해 보니, 입자들이 알알이 잘 분리되어 있었죠. 그렇게 실패의 순간에서 지금의 결과로 이어지는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늘 이야기합니다. 실패는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길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요.”
2021년 연구는 하이니켈 양극재의 수명과 열 안정성을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보호 코팅 기술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당시 박사과정이던 윤 교수는 제1저자로서 ‘코발트-보라이드(CoxB)’ 화합물을 활용한 상온 코팅 기술을 제안했으며, 이 물질이 하이니켈 양극재의 입자 표면뿐 아니라 내부까지 침투해 균열 발생을 억제하고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기존의 고온 열처리 방식과 달리, 상온 공정으로도 탁월한 보호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제조 비용 절감과 공정 간소화 측면에서 높은 실용성을 갖췄다.
해당 연구에서 개발된 코팅 기술은 500회 충·방전 이후에도 초기 용량의 95% 이상을 유지하는 높은 수명 성능을 입증했고, 특히 고온 조건에서의 미세구조 붕괴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함으로써 하이니켈 양극재의 상용화 안정성 확보에 기여했다. 더불어 이론 계산과 투과전자현미경 분석을 통해 물질의 작용 메커니즘도 규명함으로써 학문적 완성도 또한 높였다.
“하이니켈 양극소재는 고용량을 구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열적 불안정성과 수명 저하 문제가 늘 발목을 잡습니다. 이 기술은 상온에서 도포만으로 입자 전체를 보호할 수 있어 생산 비용을 크게 줄이면서도 배터리 수명을 늘릴 수 있습니다. 고온에서 코팅하지 않아도 되는 점은 공정적으로도 매우 큰 이점이죠.”
두 연구는 방향성과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고성능 배터리 소재의 실현을 위한 물성 제어와 제조 공정 혁신이라는 과제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연구적 연속성을 지닌다. 특히 2023년의 공융염 기반 단결정 합성 기술은 2025년 연구성과에서 핵심적으로 활용된 공정 개념과 실험적 기반을 제공했고, 2021년의 상온 코팅 기술은 소재 안정성 확보 측면에서 중요한 기술적 통찰을 가능하게 했다. 이처럼 선행 연구들의 경험과 기술이 축적되며, 궁극적으로 현재의 성과로 응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술과 사람이 함께 자라는 둥지, ‘Nest Lab’

Nest Lab은 'Neoteric Energy Storage Technology Lab'의 약자다. 우리말로는 '신개념 에너지 저장 시스템 연구소'를 뜻하지만, 윤 교수가 이 이름에 부여한 의미는 기술적 정의를 넘어선다. 그는 ‘둥지(nest)’라는 단어에 특별한 애정을 담아, 이 공간이 학생들이 편안하게 머무르고 성장한 뒤 사회로 날아오를 수 있는 발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구실을 꾸려왔다. 실제로 연구실의 로고도 둥지를 형상화해 디자인했다. 그렇게 Nest Lab은 연구 공간을 넘어, 성장을 이끄는 울타리이자 다양한 연결이 이루어지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고에너지밀도 리튬이온배터리용 양극 소재다. 윤 교수는 박사과정 시절부터 양극 소재를 탐구해 왔으며, 현재 연구실에서도 이 분야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양극 소재는 배터리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성 요소입니다. 음극이나 전해질, 분리막 등은 대체가 가능하지만, 양극만큼은 전고체 배터리 같은 차세대 시스템에서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 분야의 중요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실의 대부분 연구 과제는 양극 소재의 성능 개선과 가격 절감을 동시에 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산업계와의 연계성도 높아 실질적인 파급력이 큰 분야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최근 배터리 산업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 양극재 가격 절감 역시 연구실의 주된 관심사다.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비롯해,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이 이곳에서 개발되고 있다.
윤 교수는 학생들의 진로 탐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직접 보고 느끼는 경험’을 꼽는다. 그는 해외 학회 참가를 적극 장려하며, 2024년에는 학생 2명을 미국 학회에 직접 동행해 MIT 주 리(Ju Li) 교수와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진로를 정할 때, 어떤 분야가 있다는 걸 몰라서 아예 선택지에 넣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시켜주려고 노력합니다. 직접 보고 들어야 그 분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거든요. MIT 방문을 함께하면서 학생들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 모습을 보며, 앞으로도 이런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est Lab의 또 다른 특징은 공동 연구를 통해 유연하고 효율적인 연구 문화를 조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 교수는 박사후연구원 시절부터 다양한 전문 분야의 연구자들과 협업해 왔으며, 이러한 경험은 자연스러운 연구 네트워크로 이어졌다.
“연구라는 건 결국 혼자서 모든 걸 다 해낼 수는 없습니다. 전혀 다른 분야를 새로 배우는 데에 시간을 들이기보다는, 이미 전문성을 갖춘 연구자들과 협력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죠. 협업을 통해 얻게 되는 통찰과 시너지는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고자 합니다.”
이러한 유연한 협업 구조와 성장 지향적인 연구 철학은 앞으로도 Nest Lab이 추구할 중요한 지향점이 될 것이다. 그 이름처럼, Nest Lab은 연구자와 학생들이 함께 머물며 성장하고, 연결되며, 새로운 도전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따뜻한 둥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실패를 자양분 삼아 성장의 씨앗을 틔우다

윤 교수는 연구실에서 후학을 지도할 때 세 가지 태도를 늘 강조해 왔다. 바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임하는 태도’, ‘연구와 인간관계 모두에서 정중함을 잃지 않는 태도’, ‘실패를 성장의 자양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그는 연구란 결국 개인의 책임이자 기회라는 점을 학생들에게 거듭 상기시킨다. 외부 기관이나 타 연구자와의 협업에서도 공손함과 감사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실험을 함께한 외부 분석자조차도 “연구의 완성을 위한 중요한 퍼즐 조각”이라 여기며, 정중하게 대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실천한다. 이러한 태도는 단지 연구실 안에 국한되지 않고, 학제 간 공동연구나 산업 협업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실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학생들은 종종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합니다. 하지만 저는 늘 말합니다. 실패도 귀중한 데이터이며, 자부심을 가질 만한 시도였다고요. 그 실패가 결국 다음 단계를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학생들이 연구 성과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정서적 균형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해 왔다. 단지 말로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실 밖으로 나가 함께 식사하고 공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었다. 미국 유학 시절, 연구자들 사이에서 오가던 커피 한 잔이나 야구 경기 관람처럼, 작지만 일상의 환기가 연구 지속 가능성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실패를 통해 얻은 통찰이야말로 진정한 발전의 원동력이라 믿는다. 나아가 우리 사회 역시 결과 중심 경쟁을 넘어, 과정 중심의 성장에 가치를 두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에게 있어 연구란 무엇을 성취했느냐보다, 어떤 자세로 그 길을 걸었느냐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그는 분명한 비전을 갖고 있다. 졸업생들이 산업 현장에서 활약하며, ‘윤문수 교수 연구실 출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신뢰가 함께 떠오르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양극 소재 연구를 이어가되, 리튬이온을 넘어 소듐이온 배터리로 확장하고, 재활용 문제까지 통합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Nest Lab에서 시작된 그의 연구는 이제 더 넓은 가능성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과학의 여정을, 그는 마치 씨앗을 심고 기다리는 일처럼 바라본다. 지금은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의 시도가 또 하나의 실패를 지나, 언젠가 한 줄기 싹이 되어 고개를 들 것이다. 그리고 그 싹은, 다음 세대를 위한 길이 될 것이다.

취재기자 / 안유정(reporter1@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5년 7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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