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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인터뷰] 연세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 안종현 교수

대중화 가로막던 ‘자율주행자동차의 눈’ 실리콘 기반 라이다(Lidar) 센서 개발로 난제 극복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주인공이 누명을 쓰고 추격자들을 피해 도망칠 때 자동차가 주인공 대신 스스로 운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사람이 운전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의 등장은 꽤나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영화가 개봉한 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 영화 속 자동차는 이제 스크린 밖으로 나와 자율주행자동차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마주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자율주행자동차 개발 경쟁이 한창인 가운데 탑재해야 할 다양한 기술 중에서도 특히 사람의 ‘눈’ 역할을 할 라이다 센서 개발을 두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해 연세대학교 안종현 교수 연구팀이 실리콘 반도체 기반 라이다 센서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며 자율주행자동차 대중화에 성큼 다가섰다.
저비용, 고효율의 라이다 개발이 자율주행자동차 시장의 승패를 가름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이번 안 교수의 연구성과는 자율주행자동차 실용화 승기를 거머쥘 ‘결정적 한 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저비용·고효율 실리콘 라이다 센서 개발
자율주행자동차가 운행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눈과 같이 주변의 장애물을 감지해 대응할 수 있는 라이다 센서가 필요하다. 물체에 부딪혀 반사되어 나오는 초음파를 통해 형태를 파악하는 초음파 기술과 같이 라이다 센서는 장애물에 반사되어 오는 빛을 통해 장애물의 유무를 감지한다.
이때 사용되는 빛은 기존 전투기들에 사용되는 레이다와 달리 사람의 눈에 피해를 주지 않는 단파 적외선 영역의 빛이어야 한다.

문제는 실리콘 반도체가 단파 적외선을 감지할 수 없어 라이다 센서에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리콘 반도체는 구조적으로 단파 적외선을 통과시키거나 반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흡수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기존 단파 적외선을 감지할 수 있는 라이다는 모두 InGaAs 화합물 반도체로 제작되어 왔다. 하지만 InGaAs 화합물 반도체는 제작비용이 높아 자율주행자동차 대중화의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에 미국을 중심으로 수많은 기업들이 메모리반도체 등에 널리 사용되는 실리콘 반도체를 단파 적외선 감지용 라이다 센서로 적용하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실리콘 물질 자체의 특성 한계로 개발에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안 교수 연구팀은 변형제어 기술을 통해 실리콘 반도체의 전기, 광 특성을 제어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단파 적외선을 감지할 수 있는 광센서 개발에 성공했다. 

“단파 적외선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변형(Strain)을 가해 실리콘 반도체의 전자구조를 바꾸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리콘은 단단해 부서지기 쉬워 변형 제어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죠.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10여 년간 축적해 온 기술을 기반으로 결함 없이 실리콘 반도체의 두께를 10nm 이하로 줄여 높은 변형을 견딜 수 있도록 제어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안 교수는 2000년대 중반부터 반도체 산업에 널리 사용되는 실리콘 반도체의 특성을 변화시키는 연구를 수행해 왔다. 지속적인 연구 끝에 실리콘의 광학, 전기적 특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높은 변형을 주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두께를 나노미터 수준으로 얇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014년 실리콘 반도체를 1.5nm 수준으로 얇게 만드는 데 성공하며 첫 논문을 발표했고, 이후에도 광학, 전기적 특성 제어를 통한 다양한 응용 소자를 개발하는 연구를 수행한 결과 이번 실리콘 기반 라이다 센서 개발까지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제작된 실리콘 광센서는 자율주행자동차와 다양한 보안장치에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결과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수준의 기초 연구 결과입니다. 향후 심도 깊은 연구를 통해 장애물 감지용 라이다 센서로 실용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자율주행자동차의 대중화를 바짝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후속 연구는 연구실 수준의 실리콘 광센서 제작 기초 기술을 실제 자동차에 활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 레벨로 높이기 위한 기초 기술과 상업화 연결 브릿지 과제를 수행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리더연구지원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되었으며,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이재동 교수 연구팀이 공동연구팀으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2020년 7월 30일 게재되었다.



세계 상위 1% 연구자로 영향력 입증
지난 2019년 한국연구재단은 최근 10년간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연구성과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된 한국 과학자를 발표했다. 물리학 분야에서는 단 3명만이 선정되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안 교수였다. 이뿐 아니라 2018년과 2019년에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 즉, 논문의 피인용 횟수가 많은 상위 1% 연구자(Highly Cited Researcher)로 연속 선정되며, 세계적 석학이자 대한민국 과학계를 이끌어가는 독보적인 인물로서 그 존재감을 증명했다. 

이처럼 안 교수는 그래핀을 비롯한 초박막 나노소재와 플렉서블, 웨어러블 전자소자 분야에서 지난 10여 년간 가장 높은 수준의 성과를 내고 있는 석학으로 유명하다. ‘안종현’이라는 이름에 떠올리게 되는 대표적인 연구를 꼽는다면, 2010년 ‘그래핀(Graphene)을 활용한 플렉서블 터치 패널’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 TV 등 화면이 있는 전자기기를 종이처럼 접고 펴고 휠 수 있는 기술이다.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을 마치고 2008년 귀국해 교수로 부임한 이후 새로운 연구, 차별화된 연구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때 주목한 것이 플렉서블 전자기기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소재였습니다. 당시 일반 스마트폰을 넘어 플렉서블 스마트폰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그래핀을 소재로 활용해 플렉서블한 터치 패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당시 그래핀 연구를 하고 계셨던 성균관대학교 화학과 홍병희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2년여의 연구 끝에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그래핀이 세계적 화두이기는 했지만, 산업적 활용에 대한 시도가 전무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안 교수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Nature Nanotechology)’에 논문을 발표하며 그래핀의 상업적 활용 가능성을 제시하자 과학계의 폭발적인 반향이 뒤따랐다. 2010년 그래핀을 발견한 연구자들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면서 그 배경에 대한 내용으로 ‘그래핀을 활용한 플렉서블 터치 패널’ 연구성과가 인용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논문이 발표된 후 현재까지 피인용 횟수는 7,000회에 이르는데, 일반적으로 피인용 횟수가 100회면 연구 분야 관련자가 읽었고, 1,000회가 넘으면 혁신적 논문, 4,000회 이상이면 새로운 필드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지난 10년간 이 연구성과가 과학계에 몰고 온 파장과 관심의 크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안 교수는 초박막 단결정 실리콘 박막 기술 개발로 새로운 나노 기술을 창출하는 데 탁월한 기여를 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전자산업의 쌀로 불리는 단결정 실리콘을 수 나노미터 수준의 박막으로 제조해 투명하면서도 유연한 특성을 지닌 새로운 개념의 나노소재를 개발한 것으로, 투명 전자소자뿐만 아니라 플렉서블 전자소자 개발에도 중요한 기술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Nano Letters’ 저널에 2013년, 2014년, 2017년 연속 발표되며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았으며, 2014년 100대 과학기술과 국민공감 1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안 교수는 나노소재 기반 플렉서블, 웨어러블 전자소자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관련 연구로 200여 편의 논문과 40,000회 이상의 인용수를 기록하고 있다. 보유 중인 특허도 60여 개에 달한다. 아울러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2011년 한림원 젊은과학자상(대통령상), 2015년 대한민국 ICT 이노베이션대상(미래창조부 장관상), 2018년 대한민국학술원상, 2020년 나노연구혁신상(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 등 수상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네이처(Nature) 자매지인 ‘NPG Asia Materials’의 부편집장(Associated Editor)과 한국그래핀학회 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생분해성 센서 개발로 뇌 질환 진단 혁신 이끌어
안 교수가 이끌고 있는 연구 중에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인체 내에 삽입한 후 필요한 일정 시간 동안 기능을 다 한 뒤에 분해되는 ‘생분해성 전자기기(Bio-absorbable electronics)’의 개발이다.
생분해성 전자기기는 인체에 삽입 후 센서를 제거하기 위한 추가 수술이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인체에 무해하다는 특성이 있어 의료용 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2018년 안 교수 연구팀은 이차원 소재인 이황화몰리브덴(MoS₂)의 생체액에서 녹는 특성을 이용해 인체 내에서 용해/분해 가능한 생체 전자 소자를 개발한 바 있다. 그동안은 실리콘을 활용한 연구가 대부분이었는데, 실리콘은 인체 친화적이긴 하지만 ‘두껍다’는 한계 때문에 활용성이 떨어졌다.

이에 연구팀은 기상화학증착법(CVD)을 이용해 성장된 이황화몰리브덴이라는 새로운 반도체 소재를 활용, 원자 단위의 얇은 두께로 제작된 생분해성 바이오센서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또한 제작된 이황화몰리브덴 반도체 바이오센서를 생쥐의 뇌에 삽입한 후 뇌의 온도와 뇌압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는 기존에 활용된 적 없었던 전혀 새로운 소재로 굴곡이 많고 복잡한 구조를 지닌 뇌에도 접착할 수 있는 생분해성 바이오센서를 개발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차원반도체 소재의 새로운 응용 분야를 개척한 것은 물론 향후 외상성뇌출혈 등 다양한 뇌 질환 진단에 사용될 가능성을 열은 것이죠. 향후 뇌 질환 진단과 치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생명공학과, 신경외과와 협업 아래 바이오센서 및 소자 연구를 지속할 계획입니다.”

해당 연구는 안 교수 연구팀과 고려대학교 생명공학과 이경미 교수 연구팀 주도로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워싱턴대학이 공동으로 참여해 이루어졌다.
‘단층 이황화몰리브덴 기반 생체 흡수형 바이오센서’라는 제목으로 세계적 국제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2018년 6월 게재되었다.  



엉뚱한 상상이 세상을 바꾼다
우리가 갖는 고정관념의 벽은 생각보다 높고 견고하다. 사람들은 기존에 한 번 틀을 정하면 좀처럼 그것을 깨뜨리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의 벽은 과학계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현재 과학기술로 불가능하다고 해서 가능성이 없다고 미리 포기하고, 기존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고 답습하는 등 스스로를 정해진 틀, 정해진 답 안에 가둔 경우가 허다하다.

안 교수의 연구도 때때로 이런 고정관념의 벽에 부딪혀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는 기존의 것만 고집해서는 결국 그 이상이 되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언제나 새로운 연구, 상식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를 통해 연구팀에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흔들리지 않는 뚝심과 소신을 바탕으로 연구를 이끌었고, 그 결과들이 고정관념의 벽을 허물며 과학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혁신적인 연구성과를 만들어냈다.

“학창 시절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경제적으로 부족했던 환경이 오히려 저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사교육 없이 혼자 공부해야 하다 보니, 느리더라도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즐길 수밖에 없었죠. 정해진 답을 고르는 게 아니라, 답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학자를 자연스레 꿈꾸게 되었고, 그러면서 연구실 또한 틀에 박힌 연구가 아닌, 다소 엉뚱하더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실제 그가 이룬 연구성과 중 상당수는 문득 떠올린 엉뚱한 상상에서 출발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2차원 반도체 기반 생분해성 바이오센서의 경우 과거 교통사고 수술로 철심을 박게 되었던 경험이 출발점이었다.
특정 신체 분비 물질이 3~4일 만에 반도체 물질을 녹이는 특성을 발견했는데, 그렇다면 철심을 빼내야 하는 고통 없이 녹아 없어지는 의료기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이를 연구에 접목해 생분해성 바이오센서를 개발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정해진 답을 쫓아가는 한국식 교육에 익숙해 있다 보니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학생들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조훈현 9단은 ‘시키는 대로만 해서는 절대로 최고가 될 수 없다’고 말했죠. 엉뚱하고 논리가 맞지 않더라도 부딪힐 수 있도록 해주고, 실패해도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교육풍토, 연구풍토가 필요합니다.”

안종현 교수는 차세대, 차차세대가 쓸 전자소자를 개발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며, 단순히 논문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용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연구에 정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과학기술을 선도하고,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혁신적 기술을 개발하는 데 전력을 다할 계획이다.

1년 365일 꺼지지 않은 그의 연구실 불빛.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려 노력하는 열정과 이를 기어코 현실로 이루어내는 뚝심이 세계가 주목하는 과학자 안종현을 탄생시켰다.
오로지 인류의 건강한 삶, 편리한 세상을 도모하기 위한 목표 하나로 오늘도 그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간다.




취재기자 / 안유정(reporter1@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1년 2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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