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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인터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 이선종 박사님

현장 적용 응용연구로 기업의 연구 동반자가 되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하는 연구가 아닌, 연구 결과가 현장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해보고 싶었다. 실제로 연구 결과가 기업들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내가 하는 연구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뿌듯함을 많이 느낀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 이선종 박사는 나노 기술, 소재와 관련해 오랜 시간 연구를 이어오며, 현재는 기업들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응용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수년 간 고분자 응용연구를 해 온 이 박사는 연구 결과를 중소·중견 기업에 기술이전하고, 해당 연구를 발전시키며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인 매출액 증진에 보탬이 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를 통해 기존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고, 산업에 보탬이 되는 연구를 하며, 연구 결과가 연구자와 기업 모두를 즐겁게 만들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가고 있는 이 박사를 만나 연구 이야기를 들어봤다.



실제 현장에 적용되는 응용연구에 집중
2010년 연세대 화학공학 박사를 거쳐 미국에서 박사후과정을 마치고 온 이 박사는 하이브리드 나노/마이크로 소재 및 공정기술을 연구해왔다.
원천 연구보다는 현장에서 적용이 가능한 연구를 하기 위해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 몸을 담은 이 박사는 연구를 발전 시켜 최근 6년간 4건의 기술을 기업에 이전했다. 이런 기술들은 기업의 매출 증진에 큰 도움이 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서 연구혁신 부문-이사장 포상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 박사가 이처럼 응용연구를 하게 된 이유는 학부 때 영향이 크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던 그는 화학이 실제로 적용되는 응용연구를 하고 싶다고 마음먹고 화학공학과로 옮겨 박사과정을 마치게 되었다.
이 박사는 “실제 생활에 적용되는 연구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연구를 하다 보니 고분자 연구를 하게 되었다”며 “고분자는 응용 범위가 상당히 큰데, 고분자 연구를 하면서 실제 현장에 응용되는 결과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먼 미래를 보고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시일에 현장에 적용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싶어 응용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 박사가 집중하고 있는 연구는 고분자를 기반으로 한 하이브리드 나노/마이크로 소재 및 공정기술이다.
고분자는 매우 큰 분자량을 가지는 분자체로, 일정 단위체 간의 반복적인 화학 결합을 통해 만들어지는 매우 큰 분자량의 중합체를 이르는 말이다.

물질의 3대 요소 중 하나인 고분자 연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고분자 연구의 응용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이다. 고분자는 우리 주변에 많이 사용되고 있어 실제 환경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다.
이 박사는 고분자 연구를 통해 초정밀 미립자 공정기술 연구를 하고 있다. 초정밀 미립자 공정기술은 지능적인 특성을 가진 기능성 막재 소재 개발 및 이 소재를 이용한 입자 및 캡슐화 공정을 말한다.

고분자 연구를 하던 중 입자 사이즈가 작아질수록 표면적이 넓어지고, 그로 인해 소재가 가지고 있는 성능이 더 발현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소재의 성능을 높게 발현할 수 있는 초정밀 미립자 공정기술을 연구하게 되었다. 또한, 이 분야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고, 초정밀 미립자 공정기술의 확장을 위해 첨단 정보, 전자 소재 기술과의 융합을 시도했다.

이를 통해 광기능성 공액 고분자 나노입자의 제조 및 메커니즘 확인, 나노입자의 고차 구조화에 따른 기능성 및 응용성 향상 연구 진행, 나노입자 기반의 박막 제조 기술 도입을 통한 고기능성 투명 전도성 박막 제조 기술 보유 등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이 박사는 “소재의 입자 사이즈가 작아지면 성능이 더 높게 발현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초정밀 미립자 공정기술을 연구했고, 연구를 통해 소재의 한계점들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며 “연구 결과 기존에 소재들의 성능을 향상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기존 소재산업을 뒤흔드는 것은 물론, 신규 시장의 확대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다양한 산업에 적용되는 소재 기술
이 박사의 기술은 다양한 산업에 적용되면서, 기업에 기술력 향상과 매출액 증대, 신규 시장 확대, 경제성 확보 등 일석사조의 성과를 내고 있다.
그가 실제로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 몸담고 있는 6년여의 시간 동안 기업 등에 이전시킨 4건의 기술을 살펴보자.

먼저, 자외선 자가치유 고분자 소재를 개발해 국방과학연구원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자가치유 소재는 표면에 스크래치가 났을 때 자외선을 노출하면 스크래치 부분이 밑에서부터 치유가 되는 특수 소재다.
국방과학연구원에서 함정용 도료에 자가 치유 소재가 적용되었으며, 현재 특허도 완료된 상태다.
자가치유 소재의 경우 치유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재 자체가 소프트해야 하는데, 이 같은 소재의 한계를 극복해 자가 치유 성능뿐만 아니라 높은 경도와 발수 성능을 갖는 핸드폰 보호 필름, 자동차 도료, 헤드라이트 등에 소재를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개발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전기·전도성 고분자 소재도 개발했다. 전기·전도성 고분자 소재는 투명 전극 소재로도 쓸 수 있고, 흔하게는 정전기방지로도 사용할 수 있다.
전기·전도성 고분자 소재는 반도체 산업에서 패키징하는 데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핸드폰 보호 필름 등에도 사용된다.
아울러 정전기 방지 소재로써 반도체 칩, 디스플레이, 바닥재, 외벽 등 핸드폰 패키징 공장 모든 곳에서 사용될 수 있다. 이 외에도 산업용 정전기 방지 페인트, 스트레처블 전극(Stretchable electrode)재료, 국방 도료 소재 등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국방 산업에서 가시광선에 안 보이게 하는 데 사용되는 국방 스텔스(Stealth) 도료에 사용되며, 정전기 방지 도료로 제작되어 자동차에 사용되거나,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들에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다.
이 박사는 전기·전도성 고분자 소재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소재를 나노화, 마이크로화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어레서(Coalescer) 필터 제조 기술을 기업에 기술 이전하는 성과를 냈다.
석유정제 플랜트용 고효율 기-액 분리를 위한 코어레서 필터 제조기술은 천연가스 내에 있는 유분과 물을 제거하는 기술이다. 고효율 기-액 분리용 코어레서 필터는 가스 중에 액체의 응집 효과가 분리 효율을 결정하는 요소로, 연구를 통해 섬유상 필터 여재에 접촉각 140도 이상으로 소수성을 부과하기 위한 초발수 코팅기술 및 코어레서 필터 제조 기술을 개발했다.

이 박사는 가스 중 액상의 응집 효과 구현을 위한 섬유상여재 초발수 코팅 기술, 플라즈마로 전처리후 불소실란계로 코팅해 소수성 표면을 제어하는 기술 등을 개발했다. 이들 기술 중에서 플라즈마 전처리 기술과 초발수 코팅 기술이 핵심요소 기술로 꼽히며, 코어레서용 초발수 여재를 개발한 성과가 크게 인정받고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시추하는 과정에서 바닷물과 함께 나오는 천연가스의 유분과 물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해당 기술을 필요로 하던 중소기업에 기술을 이전했다.

코어레서 필터의 경우 기존에는 글로벌 기업들이전 세계에 필터를 공급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술이전으로 우리나라 중소기업에서 관련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기업은 기술력과 매출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해당 기업은 시제품을 만들어 미얀마에 있는 포스코대우에 샘플을 보내 코어레서 필터를 테스트하고 있으며, 본격적인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이 박사는 “천연가스 정제를 위한 코어레서용 초발수 여재 제조기술의 기술이전을 통해 국내 중소기업이 해외에 의존해오던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며 “해당 기업은 기술력, 가격 경쟁력, 경제성을 모두 확보하면서 매출액 증대 효과를 얻게 되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과 함께하는 연구 동반자
이번 기술이전 성공 사례처럼, 이 박사가 원하는 것은 기술 개발 연구가 기업에 직접적인 도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은 어렵지만, 가까이 있는 중소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시장을 확대해 나가는 것은 기업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박사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 몸담고 있으면서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핵심 원천기술이라는 무기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과 함께하는 연구가 쉽지만은 않다. 연구자 입장에서 기술을 개발하다가 기업에 기술을 이전해야 할 때는 기업이 원하는 가격 경쟁력 확보는 물론 복잡한 공정 등을 간소화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예상치 못했던 난관에 부딪힐 때도 있다.
그러나 몇 번에 걸친 기술이전을 통해 이런 부분들을 조율해 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 박사는 “공학적 응용연구를 하는 것은 실제 산업에 적용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며 “좋은 논문을 내고 특허를 내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시제품을 만들어서 산업에 적용하는 것이 기업에 남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코어레서 필터 외에도 전도성 고분자를 이용해서 정전기 방지 필름을 개발해 LG 디스플레이 터치패널에 적용하기도 했다.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응용연구를 통해 의미 있는 연구를 하는 이 박사는 연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즐거움’이다. 미국에서 박사후과정을 할 당시 지도 교수님의 ‘연구는 즐겁게 해야 좋은 퍼포먼스가 나온다’는 가르침을 통해 연구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을 바꾸게 되었고, 이후부터는 연구를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생들도 즐겁게 연구할 수 있도록 연구를 즐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낮은 자세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편안한 분위기의 연구실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 박사는 앞으로도 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들을 꾸준히 개발할 계획이다.
그는 “다양한 산업체에서 계속 새로운 소재들을 요구하고, 다양한 기능성을 가진 소재들을 요구하고 있어 특별한 기능을 가진 기술들을 계속 개발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다”라며 “결국에는 복합소재를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지금까지 연구해온 소재 연구를 토대로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능을 높인 하이브리드 나노/마이크로 소재를 개발하고자 한다. 전기적 특성, 자가 치유적인 특성이 합쳐진 하이브리드 소재를 개발해 전자재료는 물론, 인체에까지 적용해보고자 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다. 응용연구에 매진하며, 기업을 돕는 연구를 하는 이박사는 앞으로도 즐겁고 행복하게 연구를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그는 “제 인생에서 목표는 행복이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연구 하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연구를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개인적인 소망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취재기자 / 김지혜(reporter2@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0년 10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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