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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인터뷰] 단국대학교 공과대학 고분자시스템공학부 이원준 교수

더 가볍고 강한, 비틀림 특성이 우수한 새로운 그래핀 탄성 섬유 개발

소재 산업은 해당 산업 자체의 성장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의 기반이 됨으로써 연관된 기술 분야를 발전시키는 특징이 있다. 특히, 최근 등장하는 첨단 신소재들은 다양한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핵심요소로 꼽힌다. 2019년 일본의 소재 수출 제한 조치는 신소재 개발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 계기였다.
지난 1월 단국대학교 이원준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새로운 그래핀 탄성 섬유 역시 우리 신소재 산업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소재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어떤 물건을 어떤 재료로 만들었나에 따라 변한다.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등 인류의 역사를 얘기할 때 주로 사용하는 소재의 이름이 붙을 만큼, ‘소재’라는 것은 인류 역사의 격변기를 이끌어 왔다.
신소재는 전에 없던 물성 또는 기능을 가지는 소재를 말한다. 석기시대에 출현했던 청동기, 청동기 시대에 출현했던 철기는 당시 관점으로 보면 모두 신소재라 할 수 있다. 스테인레스 소재 역시 철을 주로 사용하던 시대에는 신소재였다.

‘새로운 소재를 어떻게, 얼마나 많이 만들어내는가’는 산업뿐 아니라 한 나라의 경제의 큰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첨단 소재들은 ICT 산업의 발전을 위한 자양분이자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쌀’에 비유된다.
그런 의미에서 단국대학교 공과대학 고분자시스템공학부 이원준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비틀림 특성이 우수한 그래핀 탄성 섬유’는 앞으로 다양한 활용이 기대된다.
이 교수는 연구를 통해 개발한 섬유가 차세대 직물은 물론, 인공근육 등으로 사용되길 기대하고 있다.



나노 기술을 통한 섬유 연구에 집중
단국대학교 고분자시스템공학부 파이버융합소재공학전공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 교수는 2013년에 한국과학기술원에서 탄소나노재료의 분자조립이란 연구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2014년부터 영국 임페리얼 컬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에서 나노재료의 1차원 섬유 조립 연구를 수행하여 친환경, 고성능 섬유에 대한 경험 쌓은 후, 2018년 3월부터 단국대학교 파이버융합소재공학전공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교수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주요 연구 분야는 ‘섬유’이다. 섬유는 가늘고 긴 실모양의 구조 단위로 기존의 섬유가 신체를 보호하거나 아름답게 보이기 위하여 개발되고 사용되어 왔다. 최근의 섬유는 필터, 배터리, 인공혈관, 타이어코드, 자동차 차체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소재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섬유 기술에 나노기술을 도입하면서 진행된 다수의 연구는 나노소재 본연의 높은 비표면적, 우수한 기계적 강도, 전기 및 열 전도성 등 특성을 활용하여 1차적으로 기존 섬유의 난제를 풀어내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노기술이 활발하게 산업 분야에 사용되게 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섬유 분야에 성공적인 활용은 극히 제한적인 상황이다.
기존 섬유의 표면에 나노소재를 코팅하거나 섬유 내부에 나노소재를 도입하는 연구를 통해 차세대 섬유 기능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사례가 많지는 않다. 또한 현재까지 진행된 연구들 역시 현재 섬유가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러한 점에 지속적인 질문을 던지며 꾸준히 섬유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현재는 제한적으로 향상된 섬유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을 연구하는 한편, 나노기술을 통해 섬유의 더 나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연구를 진행 중이다.



실용성 있는 그래핀 섬유 개발에 노력
이 교수 연구팀은 지난 1월 ‘비틀림 특성이 우수한 그래핀 탄성 섬유’를 개발했다. 연구는 한양대학교의 한태희 교수 연구팀과 함께 진행했다. 한 교수와의 인연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에서 이 교수가 탄소나노튜브(CNT)를 이용한 고성능 섬유 개발을 수행하고 있을 때, 한 교수가 런던을 방문했다. 당시 한 교수는 자유자재로 구겨지거나 종이처럼 접을 수 있는 그래핀 산화물을 섬유화하는 연구에 관심이 많았고, 이 교수의 관심사는 나노기술을 이용한 섬유 실용화였다.
이때 두 사람은 ‘정말 쓸 수 있는 그래핀 섬유를 만들자’고 마음을 모았고, ‘그래핀 산화물을 한 방향으로 완전히 정렬 시켜 보자’라는 생각으로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2011년 최초로 보고된 그래핀 산화물 섬유는 기계적 강도와 전기적 전도도를 가지는 신소재 섬유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론 물성치보다 낮은 강도와 전기적 전도도가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핀 산화물의 경우, 쉽게 휘어지고 구겨지는 특성을 갖기 때문에 거시적 섬유를 형성할 때 물성 저하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높게 된다.

당시 학계에서는 그래핀 산화물을 유체의 흐름에 따라 섬유 방향으로, 때로는 깊이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러한  초기 연구 결과는 2018년 ‘Dynamic assembly of liquid crystalline graphene oxide gel fibers for ion transport’라는 제목으로 ‘Science Advances’에 발표된 바 있다.

하지만 이 교수와 한 교수는 이러한 그래핀의 기계적 특성이 실제 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물성의 부족은 그래핀 층 간격 사이 빈 공간 때문인데 이 교수는 단위 부피에 섬유의 방향을 효과적으로 배열한다면 어떨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산화 그래핀을 면이라고 생각하고 탄소나노튜브를 선이라고 생각했을 때 유체의 흐름에 따라 이들 면과 선이 효과적으로 배열된다면 그래핀 섬유에 실용성을 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면과 선이 효과적으로 배열된다면 깊이 방향, 섬유 방향, 비틀림 모든 방향에서 힘을 전달할 수 있고 전기적 전도도 향상에도 유리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라는 이 교수의 설명이다.



신소재 비틀림 강도, 금속보다 8배, 고분자보다 300배 높아
기존에 섬유 소재로는 플라스틱(고분자) 소재가 많이 사용되어 왔다. 기계적 회전 비틀림에 강한 소재로는 금속 소재가 많이 활용되어 왔다.
하지만 고분자 소재는 비중이 낮아 가볍지만 낮은 비틀림(전단) 강도를 가지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금속 소재는 매우 높은 비틀림(전단) 강도를 가졌지만, 비중이 높아 무게가 무거운 것이 단점이었다.

이 교수가 꾸준한 연구를 통해 개발한 ‘비틀림 특성이 우수한 그래핀 탄성 섬유'는 이러한 두 소재의 장점을 모두 갖춘 소재이다. 비틀림 특성이 우수한 섬유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섬유 내부의 구성 성분인 그래핀 산화물 및 탄소나노튜브가 매우 높은 정렬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동시에 그래핀 산화물과 탄소나노튜브의 상호작용이 높아야 한다.

이 교수는 구성 성분의 높은 정렬을 만들기 위해서 섬유 방사용액의 방사 가능 속도 이론 한계치를 흐름에 대한 저항(점도)과 연계하여 계산한 후 방사를 진행했다.

또한, 흐름 특성 및 자체 정렬 능력이 우수한 그래핀 산화물 액정 용액에 CNT를 분산시켜 사용했다. 잘 분산된 CNT의 경우, 그래핀 산화물 층 사이에 삽입되어 쉽게 구겨지는 그래핀 층의 유연한 뼈대로서 작용한다. 이렇게 얻어진 섬유는 0.9 GPa의 우수한 비틀림 강도를 나타냈다. 이는 금속보다 8배, 고분자보다 300배 강한 수준이다.

가볍고 강한 소재를 정의하기 위한  무게별 강도 비율 지표(단위: MPa1/2 cm³ g-1)에 따르면 이 교수팀이 개발한 섬유는 19로, 현재 가장 완전한 구조를 가진 슈퍼 섬유로 알려진 탄소 섬유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편 탄소 섬유와 기존의 금속과 고분자물질은 비틀림보다 당기는 힘에 매우 잘 견디는 특성을 가진 반면, 그래핀 섬유는 비틀림을 더 잘 견디는 매우 이례적인 특성을 보였다. 그래핀 섬유의 우수한 비틀림 특성 결과는 그래핀을 이용하여 탄소 섬유보다 우수한 슈퍼 섬유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교수는 연구를 통해 진행된 나노 조립 섬유의 비틀림 강도 측정 방법과 탄성 측정 방법이 나노 물질 조립체의 강도 특성 연구에 폭넓게 응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당 기술이 완료된다면 앞으로 인공 근육 쪽에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근육은 매우 가는 근섬유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인공근육을 제작할 때도 마찬가지로 굽힘, 수축, 이완, 회전 운동까지 가능한 고강도 섬유가 필요합니다.
더불어 근섬유 세포의 신호 전달 체계와 유사하게 빛이나, 열, 전기적 에너지의 전달을 통해서 기계적 운동 제어를 요구합니다. 저희가 개발한 섬유의 에너지 변환 효율 및 분해능을 높이고 탄소나노재료의 독성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을 때 인공근육에 성공적으로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기존의 나노물질을 활용한 섬유의 경우, 주로 인장강도 향상에 연구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 교수의 연구는 섬유의 실용화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선과 면의 조합을 통해 최적의 구성을 만들어내어 섬유를 연사하였을 때(꼬았을 때) 최적의 성질이 나타내게 구성한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또한, 최근의 나노기술이 나노물질의 특성을 사용자 환경까지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만큼 ▲1차원 CNT와 2차원 그래핀 산화물의 섬유 조립 연구뿐만 아니라 실로써 만들어질 때 요구되는 물성을 고려한 점 ▲나노재료를 이용한 섬유의 비틀림 강도 측정 방법 및 탄성 측정 등에 대한 기준 등을 제시한 것도 이 연구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자가 복원 섬유 강화복합재료 연구 이어가
현재 이 교수는 2차원 소재인 그래핀 탄성섬유 개발에 이어 1차원 소재로 구분되는 나노선 나노튜브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많이 연구되지는 않았지만 이모골라이트(Imogolite)라고 하는 무기계 나노튜브를 가지고 프랑스의 파리대학과 영국의 임페리얼 컬리지 런던과 함께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무기계 나노튜브의 경우, 탄소나노튜브 보다 더 쉽게 정렬될 수 있고, 주변의 자극에 쉽게 반응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교수는 이미 연구를 통해 이모골라이트를 고분자 섬유 안에 분산을 시켜서 섬유를 만들었을 때 자체 정렬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고, 이를 통해 자가 치유가 가능한 섬유를 개발했다. 또한 이 성과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자가복원 섬유 강화복합재료를 연구하고 있다.

이 교수는 연구와 더불어 학생들이 배움의 과정에서 그 과정이 행복하고 유익했다고 생각하는 선생님이 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며칠 전 동료와 이야기하다 보니 제가 학교에 온지 4년째라는 부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 교수가 되었을 때는 제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강한 질문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가설을 수립하고 실험을 진행하였던 연구자로서 10년을 지내왔다면, 누군가에게 제가 아는 것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은 많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뛰어난 연구자도 아니고 인터뷰를 할 만한 연구자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빛나는 연구자이기보다는 행복한 연구자가 되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저와 함께 연구의 가설을 설립하고 수행하는 데 있어서 보다 쉽게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젊은 연구자 이 교수는 섬유공학 분야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섬유공학 분야가 오래된 분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이러한 학생들에게 섬유공학도 다가오는 미래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라는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가오는 웨어러블 시대에서 우리가 꿈꾸는 섬유를 직접 만들어내는 공학자로 자신감 있게 성장했으면 합니다.”




취재기자 / 박아영(reporter3@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1년 5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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