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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인터뷰]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부 김태일 교수

마이크로 LED 개발의 한계를 뛰어넘다 초소형 전자소자 ‘고밀도 집적’ 접착제 개발
현재 우리나라는 경쟁국의 추격을 따돌리면서 명실상부한 세계적 디스플레이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제 세계인들은 대한민국이 만들어내는 창(窓)을 통해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마이크로 LED, 휘어지는 전자소자 등 과거에는 상상만 했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국내 과학자들의 기술 개발에 더욱 촉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기술 개발과 상용화 성공 여부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만큼 최근 성균관대학교 김태일 교수 연구팀이 내고 있는 연구성과는 매우 값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차세대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를 위한 방열필름’을 개발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초소형 전자소자의 고밀도 집적을 위한 전도성 접착제’를 개발하는 등 첨단 과학기술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김태일 교수를 찾았다.


마이크로 LED, 고밀도 집적이 관건
지난해 5월, 김태일 교수가 이끄는 성균관대학교 다기능 연성소자 연구실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오랜 연구 끝에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초소형 전자소자를 고밀도로 이어 붙일 수 있으면서 전기까지 통하는 새로운 접착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최근 소자의 집적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즉, 전자소자의 구성요소는 마이크로미터 수준으로 점점 작아지고, 이를 제한된 기판 위에 고밀도로 집적하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기존에는 금속 와이어, 금속 솔더, 비등방성 도전 필름(Anisotropic conductive film, ACF) 방법을 이용해 PCB 기판 위에 집적해 왔지만, 유연한 기판,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소형화된 전자소자에서의 적용은 고온고압 공정, 느린 처리속도, 약한 물리적 안정성 등으로 사용이 매우 힘들다. 차세대 소자로 주목받고 있는 유연 폴더블 소자의 제작에는 한계점이 더욱 두드러져 연구가 지연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금속 코팅 고분자 볼(Solder ball), 여러 겹의 ACF, 액체 금속 잉크 등을 이용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나 이 역시도 기대치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특히 마이크로 LED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알려져 있으며, 크기가 작은 수천만 개의 마이크로 LED가 미리 형성되어 있는 수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전극 상으로 배열 및 전극 연결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 교수 연구팀이 고안한 것이 바로, 새로운 시스템의 비등방성 전도성* 접착제(Anisotropic conductive adhesive)였다.
연구팀은 수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초소형 전자소자의 고밀도 집적에 쉽게 적용할 수 있고, 저온·저압 공정을 통해 높은 수율과 신뢰성을 가지는 전기적 결합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에 돌입했다.

* 비등방성 전도성(Anisotropic conduction): 방향에 따라 물체의 전기전도도 성질이 다른 것.

“머리카락 굵기보다 작은 100㎛ 이하 크기의 LED 소자를 기판 위에 고밀도로 집적하려면 소자 크기의 4분의 1 이하가 되는 전극을 미리 만들어 둔 기판 위의 전극과 연결하고, 배열하는 기술이 관건입니다.
하지만 금속 와이어를 이용해 전극을 수평으로 연결하거나 열을 가해 소자를 고정하는 방식, 고온·고압 공정이 필요한 비등방성 도전 필름(ACF)을 이용하는 방법은 모두 열에 의해 변형되는 유연한 기판에는 적용하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저온·저압에서도 전기적 연결과 동시에 배열 시 부착이 가능한 새로운 소재 연구가 필요했고, 기존 본 연구실의 독창적인 기술인 Polyacrylate polymer를 이용한 선택적 비젖음성(Selective dewetting) 기술로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김 교수는 2013년부터 LED 배열에 적합한 접착소재를 연구했고, 그 결과 ‘Thin film receiver materials for deterministic assembly of transfer printing(Chem Mater /2014년)’ 및 ‘투명접착제용 조성물 및 이를 제조하는 방법(등록 번호10-1542702)’으로 우수 국제 논문과 원천기술을 획득한 바 있다.

이후 투명전도성기판 ‘Ultra-mechanically stable and transparent conductive electrodes using transferred grid of Ag nanowires on flexible substrate(Curr. Appl. Phys. /2016년)’, ‘고분자 무기나노입자 복합체 다층박막 및 이의 제조 방법(등록번호 10-2015-0182523)’으로 원천특허를 획득하며 독보적인 기술력을 쌓아 왔고, 2016년부터 그동안 확보해 온 기술을 기반으로 본 연구를 4년 동안 진행해 이번 성과("Nanoscale dewetting based direct interconnection of microelectronics for a deterministic assembly of transfer printing")를 거둘 수 있었다.




집적도 20배 높이는 전도성 접착제 개발
얇은 고분자 접착제의 안정성은 기판과 접착제의 상호작용, 형성된 접착제의 두께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러한 안정성에 따라 얇은 고분자 접착제는 각각의 고유한 젖음 성질(Wettability, 습윤성)을 가지게 된다.
즉, 기판과 접착제의 물질, 코팅된 접착제의 두께 조절을 통해 젖음 성질의 조절이 가능하다.

젖음(Wetting)은 액체가 고체 표면과 접촉을 유지하는 능력으로 표면의 친화성과 관련이 있어 균일한 피막 상태의 액체 혹은 고체의 특성을 말한다.
이에 반해 비젖음(Dewetting)은 연잎 위의 물방울과 같이 액체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표면에 균일하게 젖지 않는 특성을 의미한다. 비젖음 특성은 기판과 상기 필름의 분자 간 상호작용, 표면 에너지에 의해서 결정된다.

“젖음, 비젖음 특성을 이용해 고분자 접착제의 젖음 성질과 접착제의 두께, 나노 사이즈 금속 입자의 표면 에너지 사이의 상관관계를 이론적으로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선택적으로 비젖음 특성을 갖는 비등방성 전도성 접착제를 개발했습니다.

비등방성 전도성 접착제를 이용하면 유연한 기판 위에 발광다이오드, 트랜지스터 등 다양한 전자소자의 연결이 가능합니다.
또한, 수천 개 이상의 30μm 정도 크기 무기 발광다이오드를 99% 이상의 고수율을 유지하며 대면적으로 전사할 수 있었습니다.”

즉, 머리카락 굵기보다 작은 초소형 마이크로 LED 수천 개를 유연기판 위에 집적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이는 신용카드보다 작은 기판(5cm x 5cm)에 100μm 간격으로 60만 개의 마이크로 LED를 배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기존 상용기술 대비 20배 이상 집적도를 향상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급격한 온도 변화에 의한 열충격(-40℃~85℃ 온도 변화), 고온다습(85℃, 85% 상대습도) 환경에서의 신뢰성 테스트를 통해 기판-전도성 접착제-전자 소자 결합의 안전성 또한 확인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유연한 기판 위에 전자소자를 고밀도로 집적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다기능 유연성 웨어러블 소자와 고성능 생체 의료기기의 개발을 위한 중요한 요소기술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OLED의 단점을 극복할 대면적 디스플레이 개발의 새로운 해결책으로 주목받는 마이크로 LED의 개발이 고밀도 집적 기술의 한계로 정체된 상황에서 수천 개 마이크로 LED의 고수율 대면적 전사 공정에 성공한 이번 연구 결과가 돌파구가 될 전망이다.

“이번 연구는 스케일의 제약이 없고 공정에서의 공정마진이 넓어 특별한 장비 등이 없어도 구현 가능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마이크로 LED는 수천만 개의 Pixel을 모두 같은 휘도로 구현해야 할 만큼의 공정노하우 등이 필요하지만, 본 소재를 이용해 99.99%의 성공률을 실험실에서 확보했고, 핵심인 Dead pixel의 보수(Repair)도 간단한 방법이라 중소기업에서도 본 산업에 진입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추후 더 작은 Pixel에서도 RGB를 구현 가능한 소자 소재 관련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며, 초고밀도 집적 디스플레이가 가능한 안경과 같이 착용형 VR 등에 사용되는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를 연구할 계획입니다.”

김 교수 연구팀의 이번 연구성과는 소재 분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에 2020년 4월 16일 표지논문으로 게재되었다.



차세대 기술의 새로운 길을 열다
이번 연구 외에도 김 교수는 독창적인 사고와 도전정신으로 차세대 기술 개발에 있어 굵직한 족적을 남겨 왔다.
앞서 2019년 연구팀은 차세대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를 위한 방열필름을 개발("Anisotropic thermal conductive composite by guided assembly of boron nitride nanosheets for flexible and stretchable electronics", Advanced Functional Materials /2019년 6월 18일 게재)했다.

일반적으로 휘고 잡아당길 수 있는 소자를 위한 기판은 모두 열전달률이 낮은 고분자 소재로 이뤄져 있다.유연한 고분자일수록 열전달률이 더 낮아지는 물리적 한계 때문에 유연소자의 방열 관련 해결책은 거의 없었으며, 열화가 쉬우며 쉽게 손상되는 특성 때문에 열화 방지를 위한 소자동작 구간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이에 연구팀은 기존의 스트레처블한 고분자 필름 내에 높은 열전도성과 절연특성을 가진 질화붕소 나노입자를 필름의 상부와 하부를 잇는 마이크로 피라미드의 구조에 정렬해, 제한된 나노소재의 양을 사용하더라도 마이크로 LED 등의 소자에서 발생한 열이 피라미드 구조를 따라 빠르게 수직(1.15W/mK), 수평 방향(11.05W/mK)으로 전달될 수 있음을 밝혔다.

필름 내부의 피라미드 구조는 수직 열전도도를 향상 시킬 뿐만 아니라 스트레처블 고분자 필름에 기계적 안정성을 부여해 필름이 왜곡되거나 외부자극에 의한 변형에도 안정적으로 열 전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나아가 바코팅 공정과 전사 공정 등 간단한 상온 공정만을 이용하기 때문에 대면적 제작이 가능하다.

이 연구에서는 스트레처블 방열 필름을 금속 산화막 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MOSFET)와 스트레처블 LED의 기판으로 사용해 효과적인 열 방산을 통해 전자소자의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입증함으로써 향후 차세대 전자소자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같은 해 1월에는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실시간으로 검지할 수 있는 호르몬 센서 시스템을 구현("Chronic and acute stress monitoring by electrophysiological signal from adrenal gland" Proc. Natl. Acad. Sci. USA 미국 국립과학원회보 /2019년 1월 7일 게재)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동물 체내에 삽입 가능한 유연한 전자소자를 활용해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될 때 발생하는 부신에서의 전기 생리학적 신호를 검지했고, 이를 이용하면 부신의 스트레스 호르몬(코티졸)의 간접적 측정이 가능함을 확인했다.

“차세대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를 위한 방열필름 개발은 잡아당길 수 있는 소재 내에 제한된 양의 나노소재를 사용해 효과적 배열만으로 Soft heat sinker를 구현한 것입니다. 같은 양의 나노소재를 사용한 다른 기술대비 10여 배나 향상된 열전달 특성을 가지고 있어 마이크로 LED뿐만 아니라 향후 Flexible 소자 구현에 필요한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또한, 체내 삽입형 스트레스 호르몬 센서 개발은 생체집적소자를 생체친화적 고분자 소재를 이용해 구현하고 이를 세계 최초로 부신의 전기적신호 측정이 가능함을 보였으며, 만성 스트레스와 급성 스트레스에 따른 신호의 차이가 있음을 밝힌 연구입니다. 이는 연속측정이 가능해 만성 스트레스에 따른 우울증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기술로 향후 사용될 수 있으며 전자약이 결합된 연구를 현재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밖에도 2018년에는 식도암 세포의 재협착을 막고 항암 치료에 효과적인 다기능 식도암 스텐트를 개발("On-demand drug release from gold nanoturf for a thermo- and chemotherapeutic esophageal stent (TES)", ACS Nano/ 2018년 게재)한 바 있다.
이 식도암 스텐트는 형상기억합금 니티놀(Nitinol) 소재의 스텐트 표면에 나노구조를 효과적으로 형성, 약물을 담고 있다가 약물 방출속도를 조절해 식도암을 치료하고 암조직이 스텐트에 재협착되는 것을 최소화한다.

이처럼 약물 담지, 약물 방출 조절, 열치료, 식도암세포 재협착 방지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어 치유뿐 아니라 재발 확률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연구 성공의 열쇠는 ‘계획’과 ‘치열한 준비’
김 교수 연구의 핵심동력인 ‘다기능 연성소자 연구실’은 2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구 분야는 크게 나노공정(NT), 유연소자공정(IT), 생체모방기술(BT), 바이오 전자소자기술 (BT) 등 4개의 연구분야로 나눠져 있다.
연구원 모두 2가지 이상의 연구를 동시 진행하도록 유도해 자연스럽게 융합연구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나노공정을 이용한 바이오 전자소자를 연구할 수 있고, 유연소자를 이용한 바이오 전자소자 등과 같이 IT, NT, BT의 실질적 융합이 가능해 최고 수준의 연구논문이 매년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우수한 연구자, 전문가를 양성해 국내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연구실의 목표이다.

“우리 연구실의 차별화된 특징은 모든 연구원, 학생들이 독립적으로 연구하고 있어 수평적 디스커션이 가능하고, 융합연구를 지향한다는 점입니다. 일례로 20분의 세미나에서 질문 시간이 30~40분가량 되는 등 문제 도출과 논리적 사고능력 강화를 유도하고 있죠.

또한, 1년에 2회(방학 기간 중) 1대 1로 식사 자리를 마련해 장래 희망, 가정환경 등 개인적인 고민이나 의견을 듣고 개개인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합니다. 학생들의 학회 참여는 연구논문만 잘 쓰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실의 공헌도에 따른 수요제한 규칙을 둠으로써 모든 학생들이 골고루 일을 나눠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연구란 매우 많은 노력과 인내를 감수하며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도록 역량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김 교수는 계획을 세운 후 그 계획이 실패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런 만큼 평소 후학들에게 단기적,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지식과 정보를 쌓으며, 치열하게 준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본디 계획이란 스스로가 설정하는 것이고, 그 계획은 항상 책임과 위험이 따릅니다.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은 그 계획을 성공하게 할 수 있는 최적화된 루트를 찾는 것이 선행적이며, 이는 그 목표를 위한 제반 정보의 습득이 필수적입니다.

즉, 알아야 실패하지 않을 수 있고, 실패하지 않아야 계획의 성공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흔히들 실패해도 좋다, 실패로부터 배운다고 하지만 계획되지 않은 실행으로 얻어지는 실패는 지속될 확률이 높고 정신적 좌절감으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반면, 충분한 계획과 지속적인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성공은 더 큰 달콤함과 자신감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소신처럼 김 교수의 연구는 언제나 거침이 없다. 목표를 세우면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자신의 결정을 믿고 연구에 몰두한다. 그리고 이러한 뚝심이 첨단과학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며, 인정받는 ‘과학자 김태일’을 만들었다.
인류에게 이로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을 탄생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그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취재기자 / 안유정(reporter1@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1년 1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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