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수님 인터뷰] 경희대학교 신소재공학과 박윤석 교수
  • 자기장으로 심장의 박동을 모사하다 극단적 혈압변화도 재현 가능한 심혈관 시뮬레이터 개발

  • 심장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뛰고, 멈추고, 다시 뛰며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 복잡하고 미묘한 압력의 리듬을 실험실 위에서 구현한다는 것은, 인간 생리의 본질을 정밀하게 다룬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심혈관 시뮬레이터는 정밀도와 응답성에 있어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기계식 밸브와 유압 펌프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은 빠르게 변화하는 심장 박동의 압력 곡선을 담아내기에 지나치게 무겁고 느렸다.
    경희대학교 박윤석 교수 연구팀은 이 기술적 한계에 정면으로 응답했다. 대동맥 판막 구조를 본뜬 유연한 자성 심장판막(MHV)을 설계하고, 외부 자기장으로 실시간 개폐를 제어하는 새로운 방식의 고정밀 심혈관 시뮬레이터를 구현해 낸 것이다. 정상 심박은 물론, 고속 박동과 병리적 패턴까지 정교하게 구현할 수 있으며, ±1mmHg 이내의 오차로 압력 곡선을 재현할 수 있는 정밀도를 갖췄다. 
    생명을 품은 압력의 흐름을 손끝으로 다룰 수 있게 된 지금, 실험실 안의 심장은 더 이상 정지된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현상을 탐구하는 기술이자, 미래 의료의 실현을 향해 박동하는 또 하나의 심장이다.


    자기장 변화에 따라 심장판막 개폐 동작 모사

    연구팀의 심혈관 시뮬레이터 연구는 외부 자기장에 반응해 형태가 바뀌는 유연한 자성 구조체의 정밀 제어 실험에서 출발했다. 초기에는 자성 입자를 포함한 종이를 활용해 나침반처럼 방향을 바꾸는 움직임을 구현했고, 이후 자벌레처럼 기어가는 로봇형 구조로 발전했지만, 정밀한 제어에는 한계를 보였다. 전자석 기반 제어가 더 정교한 동작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확인한 뒤, 이를 기반으로 한 판막 시스템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처음에는 자석 종이를 이용해 자벌레처럼 기어가는 구조를 만들려 했지만 세밀하게 조정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때 학생이 전자석을 사용해 보자고 제안했고, 전류를 흘려 솔레노이드를 만든 후 유연한 자성 소재를 넣었더니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했죠. 그 모습을 보고 이 원리를 판막처럼 열리고 닫히는 시스템으로 발전시킬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연구팀은 사람의 대동맥 판막 구조를 모사한 3엽 구조의 자성 심장판막(MHV, Magnetic Heart Valve)을 설계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기장 제어형 고정밀 심혈관 시뮬레이터를 개발했다. MHV는 고탄성 고분자인 Ecoflex 0030에 지름 약 5μm의 네오디뮴 자기입자(NdFeB)를 90wt% 비율로 균일하게 혼합해 제작되었으며, 외부 자기장에 따라 유연하게 개폐되면서 수축기와 이완기 동안 혈류를 한 방향으로 정밀하게 제어한다.
    시뮬레이터에는 상·하부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자화된 두 개의 MHV가 장착되고, 전자석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의 극성과 세기에 따라 인력 또는 척력이 유도되며 밸브가 개폐된다. 전자석은 CNC 가공된 철심과 105회 감긴 구리선 코일로 구성되며, 아두이노 기반 제어 시스템으로 구동된다. PWM(Pulse Width Modulation) 신호를 통해 개폐 주기, 파형, 주파수 등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어 다양한 실험 조건에 유연하게 대응 가능하다.
    “실험 과정에서 가장 집중한 부분은 자성 복합체의 조성을 최적화하는 것이었습니다. NdFeB 함량을 달리해 수십 차례 실험을 반복했고, 유연성, 복원력, 개폐 유지력 등 성능을 모두 만족시키는 조성으로 90wt%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또한 자화 방향이 균일하지 않으면 밸브가 정확히 개폐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 자화 방향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전용 지그를 직접 3D 모델링해 제작했습니다.” 완성된 시뮬레이터는 미세한 자기장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개방 시 약 210ms, 폐쇄 시 약 150ms의 응답 속도를 기록했다. 이는 심박수 300bpm 조건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전체 혈압 곡선을 실제 인체와 거의 일치하는 정밀도로 재현해, 기존 상용 시뮬레이터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수준의 생체모사 성능을 입증했다.
    실험에서는 성인 기준 수축기 120mmHg, 이완기 80mmHg 조건에서 ±1mmHg 이내의 오차 범위로 맥압 곡선이 재현되었으며, 이는 유럽고혈압학회(ESH) A등급 기준(±5mmHg)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또한 부정맥, 조기 심실수축, 간헐적 심정지 등 다양한 병리적 상태의 파형까지도 프로그래밍을 통해 자유롭게 생성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맥압 곡선의 정밀 구현, 심혈관 연구의 전기를 마련하다

    이번 시스템은 기존 기계식 또는 유압식 제어 기술에서 흔히 발생하던 구조적 복잡성과 반응성 한계를 효과적으로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정밀 자기장 제어를 통해 다양한 맥압 파형을 실시간으로 생성할 수 있으며, 그 정밀도는 정상적인 혈압 곡선은 물론 병리적 상태까지 구현 가능한 수준에 이른다.
    “저희가 만든 구조는 기존처럼 외부 장치에 의존하지 않고도, 전자석만으로 다양한 파형을 빠르게 전환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 제어만으로 온·오프 스위칭이 가능하기 때문에 설계 유연성도 매우 높았고요. 기존 대비 10배 이상 빠른 반응 속도를 구현했고, 그 결과 다양한 인체 맥압을 정밀하게 재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스템의 또 다른 차별점은 소프트 밸브 기반 설계가 가져온 소형화와 정밀도의 동시 구현이다. 실제 심장의 3엽 구조를 모사한 유연한 복합체에 자기입자를 균일하게 혼합하고, 그 내부 자화 방향을 정밀하게 정렬함으로써 작은 사이즈에서도 고성능 반응을 유도할 수 있었다. 이는 기존 대형 유압 시스템이 충족시키기 어려웠던 응답성과 재현성을 동시에 확보한 사례로, 하나의 플랫폼 내에서 생리학적 및 병리학적 맥압 곡선을 모두 구현할 수 있는 기술적 전환점을 보여준다.

    “맥박은 신체 부위에 따라 다르고, 비정상적인 파형은 실험으로 구현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스템은 프로그래밍된 자기장 제어만으로 다양한 병리적 맥압까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의대생들이 실제로 경험하기 어려운 맥박을 미리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용 시뮬레이터로도 높은 실효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당 내용은 활용 가능성도 눈에 띈다. 연구팀은 이번 기술이 실험실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의료기기 검증 플랫폼, 약물 테스트 시스템, 인공 혈관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파급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전자제어 기반 소형 시스템이기 때문에, 웨어러블 생체계측 장치나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인공 장기용 로봇 장치로의 확장성도 충분하다고 평가된다. 다만 상용화를 위해서는 10,000회 이상의 반복 작동에 대한 내구성 검증, 상용 회로와의 통합 설계, 그리고 폐루프 기반 피드백 제어 기술의 개발이 필요하다.
    “현실적인 출발점은 의과 교육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소형화도 이미 가능한 상황이고, 진입 장벽도 높지 않기 때문에 병원이나 대학에서 먼저 관심을 보여준다면 곧바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연구실 안에서 머무르지 않고 의료와 교육 현장으로 연결되도록 다리를 놓는 일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적인 재료과학 저널 ‘Advanced Materials’에 2025년 4월 24일자로 게재되었으며, 속 뒷표지(Inside Back Cover) 논문으로도 선정되어 학술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자기장 기반 무선 에너지 전달 시스템 개발

    올해 연구팀은 심혈관 시뮬레이터 외에 무선으로 생체 전자기기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차세대 전력 시스템을 개발하며 자성 기반 소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자기장을 이용해 마찰전기를 유도하고, 이를 에너지로 전환하는 MA-TENG(Magnetically Actuated Triboelectric Nanogenerator) 기술로, 2025년 4월 23일 ‘Science Advances’에 게재되며 생체 이식형 디바이스의 새로운 전력 공급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가천대학교 윤홍준 교수 공동연구).
    기존 무선 전력 공급 방식은 생체 환경에서의 실용성에 제약이 많았다. RF 방식은 발열 문제로 조직 손상의 우려가 크고, 초음파 방식은 송수신 장치 간 정렬 조건이 까다로우며, 주변 매질 변화에 따라 출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단점이 있었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 자기장으로 내부 자성 복합체를 진동시키고 전극 간 접촉과 분리를 반복 유도하는 방식의 마찰전기 발전 시스템을 설계했다. 기계적 접촉 없이 자기장만으로 작동하는 구조는 생체 환경에서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이다.
    “기존 기술은 정렬 조건이 조금만 틀어져도 출력이 뚝 떨어지고, 열이 발생해서 실제 이식에는 부담이 컸습니다. 저희는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 자기장을 이용한 마찰전기 방식을 고안했고, 외부 전자석만으로 내부 자성체가 움직이도록 설계했습니다. 그 결과 접촉이나 압력이 없어도 에너지가 발생하고, 어떤 매질에서도 출력이 일정하게 유지되었죠. 특히 발열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생체조직 안에서도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MA-TENG의 핵심은 NdFeB과 BaTiO₃로 구성된 자성 복합체와 이를 수용하는 유연한 전극 구조다. NdFeB는 자기장에 반응해 진동을 유도하고, BaTiO₃는 마찰전기 발생 효율을 극대화한다. 실험에서는 공기, 물, 지방, 금속, 직물 등 다양한 매질 조건에서도 안정적인 출력을 확인했으며, 중심축에서 50% 벗어난 위치나 30도 비정렬 조건에서도 정상 조건 대비 약 80%의 성능을 유지했다. 장치 표면의 발열도 거의 감지되지 않아, 생체조직 내 이식 조건에서도 안정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찰전기를 이용한 소자는 대부분 외부 자극이 있어야 작동합니다. 그런데 MA-TENG는 자기장 하나만으로도 내부에서 진동이 유도되고, 실제로 돼지 지방조직에 이식한 상태에서도 출력이 유지되었습니다. 80도 환경에서 14일간의 고온 노화 실험도 무리 없이 통과했고요. 이 정도면 의료 현장에서 실제 사용 가능성을 충분히 갖췄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MA-TENG가 기존 TENG 발전 소자 대비 출력과 안정성 면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직류 전력으로 정류한 출력은 심박조율기, 신경 자극기, 생체 센서 등 다양한 생체전자기기 구동 실험에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전력 소모가 적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나 전자 피부에도 적용될 수 있다. 정렬 조건 없이 자기장을 투과할 수 있다는 특성은 스마트 의류, 구조용 장비, 군사용 장비 등 다양한 응용 환경에도 적합하다.
    “기술이라는 건 결국 어디에 쓰이는지가 중요하잖아요. 저희가 MA-TENG를 설계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습니다. 배터리 교체가 불가능하거나 외부 충전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 기술이 작동해야만 의미가 있으니까요. 기술의 완성도만큼이나, 쓰일 수 있는 상황을 넓히는 데 집중했습니다.” MA-TENG는 기계적 구조가 단순하고 소재가 유연해 대량 제조에도 유리하다는 장점을 가진다. 향후에는 다양한 자기장 발생기 설계, 회로 통합, 생분해성 검증 등 추가 연구를 통해 바이오 전자기기의 핵심 전력 플랫폼으로 실용화될 가능성이 높다. 


    자극에 따라 강성 조절하는 차세대 지능형 소재 선보여

    자성을 활용한 연구들이 연이어 성과를 내는 가운데, 연구팀은 최근 새로운 차원의 자기장 반응형 메타물질을 개발해 또 한 번 연구역량을 입증했다. 기존의 시뮬레이터, 에너지 전달 소자가 기능 중심의 구조였다면, 이번에는 물성 자체를 능동적으로 전환하는 ‘지능형 구조체’로 연구의 외연을 확장한 사례다. 관련 논문은 Advanced Materials에 2025년 5월 27일 자로 게재되었다(한국전기연구원 설승권 박사 공동연구).
    연구팀은 구조와 기능이 분리되지 않은 재료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 생물학적 근육의 수축 메커니즘에서 착안했다. 자기장 변화에 따라 즉시 부드러움과 단단함을 전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 구조는,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는 로봇이나 의료기기 소재로 적합하다. 특히 기계적 특성을 소프트·미디엄·하드 3단계로 나눠 조절할 수 있어, 켜짐/꺼짐 제어를 넘는 고해상도 물성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술적 진일보를 보여준다.
    “일반적인 소재는 처음부터 성질이 고정되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만든 메타물질은 상황에 따라 성질을 바꿔요. 어떤 순간엔 부드럽게 늘어나고, 또 어떤 상황에선 갑자기 단단해지죠. 복잡한 지형에서 변형이 요구되는 바퀴라든지, 다양한 하중에 노출되는 인공근육 같은 데 바로 응용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구조가 다양한 조건에 능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소재 제작에는 고탄성 고분자 SIS(Styrene-Isoprene-Styrene)와 강자성체 NdFeB를 혼합한 복합 잉크가 사용되었으며, 이를 4D 프린팅 방식으로 출력하여 응답형 구조체를 구현했다. 약 0.1초 내외의 반응속도로 자기장에 반응하며, 실시간으로 최대 390% 수준의 강도 차이를 형성할 수 있다. 더불어 다층 배열 구조에서는 자기장 세기와 방향에 따라 여러 층의 강성을 동시에 조정할 수 있는 기능도 확보되었다.
    이를 실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자기장에 반응해 형태를 바꾸는 바퀴 시스템도 함께 설계했다. 주행 중 지면 상태에 따라 부드럽게 변형되거나 단단히 유지되는 방식으로, 로봇 구조물의 유연성과 주행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정교한 동작 제어가 필요한 웨어러블 플랫폼이나 인공근육 시스템에도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마이크로바이오소자 연구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성장하다

    박 교수가 이끄는 ‘마이크로바이오소자 연구실(Bioelectronics and Microsystems Laboratory)’은 전기생리 신호 측정 소자, 자성 기반 마이크로 시스템, 피부 부착형 센서 등 차세대 바이오전자 기술을 폭넓게 연구하는 융합 연구 공간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발표된 연속적인 고임팩트 성과들은 박윤석 교수와 학생들 간 긴밀한 협업에서 비롯되었다.
    연구실의 연구 방향은 ▲인체 조직 기반 신경 인터페이스 ▲자성 입자를 이용한 무선 제어 플랫폼 ▲고효율 생체 신호 센서 등으로 구성되며, 생체모사 기술과 전자소자를 결합한 시스템 중심의 접근 방식을 따른다. 이 가운데 ‘무선 자성 제어 시스템’은 최근 논문 다수가 발표되며 연구실의 핵심 분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는 ‘같이 고민하고 같이 풀어가는’ 연구 문화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박 교수는 연구실 운영 초기부터 실험 설계에 적극 참여하며, 지금도 학생들과의 빈번한 소통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학생들은 각자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고, 저는 그 방향을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이야기하고, 실험이 어긋나기 전에 빠르게 방향을 잡아주는 게 제 몫이죠. 그래서 매일 같이 미팅하고, 자주 찾아가고, 자주 묻습니다. 관심이 있어야 실험도 살고 아이디어도 자라나니까요.” 
    박 교수는 스스로를 ‘지도자’가 아닌 ‘동료 연구자’로 정의하며, 처음에는 개입을 많이 하더라도 점차 학생 스스로 중심을 잡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연구 주제 역시 일방적으로 지정하지 않고, 선배 연구원들이 각자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면 신입생이 그중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문화는 연구 자율성과 책임감을 동시에 키운다. 정기 미팅을 주 2회로 늘리는 학생도 있을 만큼, 실험에 대한 몰입도는 자율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다.
    “학생이 ‘잘하고 싶은데 자신이 없어요’라고 말하면 저는 ‘그럼 내가 널 위해 뭘 도와줄 수 있을까’라고 되묻습니다. 그 대화를 시작으로 정기 미팅을 늘리거나, 실험을 바꿔보는 등 함께 방향을 찾죠. 무언가 막혀 있을 때, 저는 옆에서 그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같이 고민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연구실은 형식적인 보고보다는 자발적인 협업을 지향한다. 연구원들 스스로 각자 맡은 프로젝트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으며, 필요시 서로의 연구에 유연하게 참여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연구 외적인 교류 역시 연구실 분위기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연구 성과만큼이나 팀워크를 중시하는 문화는 다양한 취미 활동과 일상적 교류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다.
    외부 공동 연구도 활발하다. 심장 시뮬레이터 시스템은 독립적으로 수행된 반면, 무선 에너지 소자 및 지능형 소재 연구는 다기관 협업을 통해 추진되었다. 박 교수는 앞으로도 협력의 폭을 넓혀, 기초 연구에서 실용화까지 이어지는 응용성과 확장성의 두 축을 함께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재미’라는 불씨로 타오르는 연구자의 길

    박 교수의 연구 여정은 늘 ‘재미’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공학의 길에 들어섰을 땐 막연했지만, 어느 세미나에서 처음 마주한 바이오 전자소자의 세계는 그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척수가 손상된 환자들이 다시 걸을 수 있도록 돕는 소자를 연구하는 발표를 들으며, 그는 이런 기술이야말로 사람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그전에는 OLED나 유기 태양전지처럼 수치로 성능을 확인하는 연구를 주로 해왔습니다. 물론 효율이나 밝기를 측정하는 건 중요하지만, 그 과정이 추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죠. 그런데 바이오 전자소자는 실험대 위에서 소자가 실제로 반응하고, 움직이는 걸 ‘눈으로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이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지금도 실험을 할 때마다 그 설렘이 되살아납니다.” 학생들에게 그는 언제나 강조한다. 앞에 놓인 첫 허들만 넘으면 그다음은 조금 더 쉬워진다고. 그리고 연구의 즐거움은 시작해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직접 손으로 만들고,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재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재미없어요”라는 말에 “그건 아직 해보지 않아서일 뿐”이라는 답을 되돌려주곤 한다.
    기술적 방향성과는 별개로, 박 교수는 최근 대학생들이 인공지능 시대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고등학생들은 이미 AI를 준비하고, 기업은 신입사원에게 AI 활용 역량을 기대하고 있는데, 정작 대학 교육은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수업 시간마다 “AI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한다. 융합적 사고, 다양한 도구의 활용 능력, 기술과 인문이 연결되는 감각. 앞으로의 연구자는 이러한 역량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끝으로 박 교수는 지금처럼 연구가 계속 재미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 분야에 발을 들인 지 7~8년이 지났지만, 단 한 번도 연구가 지루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여전히 실험 결과에 설레고, 학생들과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행정 업무나 수업 준비로 지치는 날이 많지만, 연구 자체만큼은 그에게 쉼이자 위안이 되는 시간이다.
    아울러 삶을 바꾸는 기술,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연구를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그런 연구를 향한 여정이 재미있기를, 여전히 설렐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세상을 바꾸는 연구는 거대한 이념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재미’라는 작은 불씨 하나가 마음속에 살아 있으면, 언젠가 그 작은 빛이 누군가의 삶을 밝혀줄 수 있다. 지금도 그는 그 불씨를 간직한 채, 매일 아침 연구실의 문을 설레는 마음으로 열고 있다.

    취재기자 / 안유정(reporter1@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5년 10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 글쓴날 : [25-10-14 09:59]
    • 최진민 기자[reporter2@s21.co.kr]
    • 다른기사보기 최진민 기자의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