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신호부터 암과 면역까지, 20년을 관통한 연구 궤적
2001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후, 뉴욕 메모리얼슬로안케터링 암센터에서 짧은 박사후과정을 거치고 귀국한 이정원 교수는 연구자로서 평생을 걸 주제를 정하기 위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당시 그는 세포 부착과 생존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었다. 정상 세포는 부착되어야 생존이 가능하지만, 암세포는 비부착 상태에서도 죽지 않는 특징을 보이며, 이는 암의 전이 및 침윤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 같은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대한 관심은 귀국 이후에도 그의 연구 방향을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귀국 직후, 그는 세포 부착 여부에 따라 발현이 뚜렷하게 달라지는 유전자를 탐색했고, 그중 주목한 것이 바로 TM4SF5였다. 실험을 통해 의미 있는 유전자 리스트에서 발현 변화가 큰 순서로 열 번째에 위치했던 이 유전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던 테트라스패닌 계열 단백질로, 세포막을 네 번 관통하며 세포부착 수용체인 인테그린과 상호작용하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특히 부착 상태일 때 발현이 높아지는 양상은, 이 교수가 관심을 갖고 있던 세포 부착 신호전달과도 직접 맞닿아 있었다.
이 유전자가 처음 논문에 등장한 시기는 1998년이었지만, 그가 이를 주목한 2001년까지 발표된 관련 논문은 고작 6편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대부분이 환자 조직 샘플에서 발현이 높다는 수준의 관찰에 그쳤고, 작용 기전이나 생물학적 의미를 본격적으로 다룬 연구는 없었다. 실험에 필요한 항체나 유전자 클론도 전혀 존재하지 않아, 연구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당시 저는 오히려 그 상황이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아직 아무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고, 암 조직에서 발현이 높다는 임상적 단서는 있는데, 정작 이 유전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전혀 알려진 게 없었거든요. 탐색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죠. 결국 실험에 필요한 도구는 저희가 전부 직접 만들었고, 그렇게 해서 2003년 무렵 TM4SF5를 중심으로 한 첫 논문을 낼 수 있었습니다.”
연구 초기에는 이 단백질이 세포 부착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기능을 규명하는 데 집중했다. TM4SF5가 부착 환경에서 인테그린 신호를 어떻게 조절하는지를 밝히는 실험들이 주를 이뤘으며, 이를 통해 이 교수는 자신의 연구 방향을 이 유전자에 점차 결합시키기 시작했다.
이후 연구는 암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TM4SF5가 EMT(상피간엽이행) 현상에 관여해 암세포의 이동성과 전이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암 발생과 침윤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했다. 이어 2010년경부터는 EMT가 섬유화 과정과도 연관된다는 점에 착안해, 간 섬유화 연구로 주제를 넓혔다. 추후 유전자 조절 마우스 모델을 통해, TM4SF5가 섬유화뿐 아니라 지방 축적과 염증 반응에도 관여한다는 사실을 추가적으로 밝혀냈다.
2014년 무렵부터는 지방간염(NASH)과의 연관성을 규명해 나갔고, 대사 이상과 염증 반응이 얽힌 병태생리에서 면역세포의 역할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렇게 2020년경 이후에는 면역조절 기능을 중심으로 연구가 본의 아니게 전개되었다. 간 상피세포에 존재하는 TM4SF5가 T세포, NK세포, 대식세포 등에 병리적 영향을 미쳐, 면역계의 균형을 깨뜨리고 결국 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결고리까지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 교수의 TM4SF5 연구는 암 → 섬유화 → 지방간염 → 면역조절 → 암이라는 순환 구조 속에서 통합적 관점으로 확장되어 왔다. 단일 유전자에서 출발한 탐구는 이제 암과 면역, 염증, 대사질환을 아우르는 다층적 해석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가능성은 여전히 확장 중이다.
면역 탈진 차단을 통한 간암 억제 기전 규명
이 교수의 최근 연구는 면역항암제 분야에서 기존 접근의 한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TM4SF5는 기존 면역관문억제제와 다른 방식과 표적으로 작동하며, 면역세포의 탈진을 유도하는 병리적 신호로 기능한다. 이를 차단하면, T세포나 NK세포 같은 면역세포가 활성을 유지한 채 암세포를 지속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타깃은 기존 면역항암제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새로운 면역체크포인트입니다. TM4SF5는 면역세포들을 탈진 상태로 만들기 때문에, 이를 막아주면 면역세포가 제대로 작동해서 암세포를 억제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요. 현재 제약 산업에서 주목받고 있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교수는 특히 TM4SF5가 지방간염과 간암 모두에 병리적으로 관여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간암은 암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조직에 지방간염, 만성 염증, 섬유화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기존 면역항암제를 단일처리로 사용할 경우, 지방간염 및 간경화가 악화되어 생긴 간암의 경우에는, 전체 간조직의 기능이 나빠지며 암은 억제가 비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TM4SF5는 이 두 질환 모두에 관여하므로, 하나의 표적으로 동시에 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간암 발병의 80%에 이르는 지방간염 유래 간암의 치료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는 TM4SF5가 간 상피세포에서 NK세포의 면역관문인 SLAMF7의 발현을 억제하고, 이를 통해 면역 탈진을 유도한다는 점이 규명되었다(2025년 1월, Signal Transduction and Targeted Therapy 게재, 2024년 Impact factor=52.7). TM4SF5는 SLAMF7과 결합한 뒤 이를 리소좀으로 이동시켜 오토파지를 통해 분해시키고, 이로 인해 NK세포의 세포독성이 감소하면서 간암의 성장을 억제하지 못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TM4SF5와 SLAMF7의 결합을 막는 isoxazole 기반의 억제제(TSI)를 차의과학대학의 서영거 교수 연구팀(김현수 박사)과 협력해 발굴하고, 이 약물을 투여했을 때 NK세포 활성이 회복되고 간암 진행이 억제되는 효과를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기존 면역항암제의 작용 범위를 확장하고, 고형암인 간암에 적용 가능한 새로운 치료 기전을 제시한 셈이다.
다만 이번 연구는 완제품 형태의 신약 개발보다는, 기초 연구 수준에서 약물 표적의 타당성과 작용 기전을 검증한 결과에 가깝다. 그럼에도 BIO USA 현장에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연구팀의 아이템을 소개했을 때, FDA 승인 면역항암제 약물들과 비교해도 유사한 효능을 보여줌으로써, 경쟁력 있는 데이터를 제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높은 관심을 끌었다.
“보통 바이올로지 논문은 리비전에 3개월, 길게는 6개월도 걸려요. 그런데 이번엔 딱 28일이더라고요. 조금만 어긋나도 논문 자체가 탈락될 수 있다는 압박이 느껴졌죠. 실험 하나당 학생연구원 두세 명씩 투입해서 인력으로 밀어붙였어요. 4주짜리 실험을 3주 안에 돌리고, 데이터 분석도 병행하면서 정말 벼랑 끝에서 버텨냈죠.”
이번 성과는 여러 해에 걸쳐 축적된 연구 결과의 결실이지만, 논문 게재를 위한 마지막 리비전 과정은 극도의 시간 압박 속에서 진행되었다. 저널 측이 제시한 수정 기간은 단 28일. 통상 3개월 이상 주어지는 리비전과 달리, 한 달이라는 제한 속에서 약물 동태학과 독성 평가까지 추가해야 했다.
이번 연구에는 석박사통합과정 중인 김원식 연구원이 주요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그는 이 논문의 주요 기여자 중 한 명으로, 연구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대한약학회에서 수여하는 ‘미래약학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김 연구원은 면역항암제의 고형암 적용 가능성을 넓히기 위한 후속 연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 교수는 김원식 연구원 사례처럼, 이런 과정이 학생들에게 실험 이상의 의미로 남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기획하고, 주도적으로 연구를 끌어가는 과정에서 연구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솔직히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학원에 들어와도 연구가 왜 중요한지 잘 몰라요. 성적이나 권유 때문에 오는 경우도 많죠. 그래서 저는 설명보다, 직접 경험하게 만드는 게 훨씬 강한 동기부여라고 생각합니다. 이 친구도 이번 경험을 통해 ‘이건 시작일 뿐이고, 더 나아가야 한다’는 걸 체감했을 거예요. 그게 진짜 성장의 출발점이죠.”
연구실의 시스템이 함께 만들어낸 이 한 편의 논문은 TM4SF5라는 막단백질에서 출발해, 새로운 면역항암 전략의 실마리를 제시한 원천기술적 단서로 이어졌다. 동시에 한 명의 젊은 연구자에게는 자신의 진로와 연구 목표를 더욱 분명히 마주하게 만든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이 교수의 연구는 그렇게, 기술과 사람이라는 두 축 위에서 의미를 축적해 가고 있다.
NK세포와 T세포 모두 조절하는 차세대 항암 플랫폼 구상
2025년 1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이후, 연구팀은 곧바로 후속 단계를 준비하며 T세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간암 상피세포와 T세포 간의 상호작용을 새롭게 해석하고, TM4SF5가 면역 탈진을 어떻게 유도하는지를 분자 수준에서 규명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현재 약 60% 이상의 완성도를 보이며, 세 명의 학생이 1년 가까이 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전체 논문 구성은 올해 겨울쯤 마무리되고, 아마도 내년 상반기~중반기에는 심사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후속 연구에서 특히 주목하는 지점은, TM4SF5가 특정 면역세포에 국한되지 않고, NK세포와 T세포 모두에 병리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TM4SF5는 NK세포와 T세포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면역을 억제합니다. NK세포에서는 SLAMF7을 세포 안으로 끌고 들어가 리소좀에서 분해시키고, T세포에서는 PD-L1을 유도해서 PD-1과 결합하게 하죠. 하나의 단백질이 이렇게 두 경로를 동시에 조절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에요. 아주 흥미로운 측면이지요.”
이 교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TM4SF5를 표적하는 다양한 약물 후보군을 직접 실험 중이다. 항체 기반 약물인 S43은 이미 anti-TM4SF5 모노클로날 항체로 특허 출원과 논문 발표를 완료했으며, 최근에는 저분자 화합물 TSI가 TM4SF5와 SLAMF7 또는 PD-L1 간 결합을 차단하는 효과를 확인했다. 즉, 하나의 약물로 두 면역세포를 동시에 활성화하는 ‘이중 조절 전략’이 실현 가능함을 실험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한 샘플 안에서 NK세포와 T세포의 반응을 동시에 관찰하고 정량화할 수 있는 통합 분석 시스템도 새롭게 설계 중이다. 이는 효능 향상을 넘어서, 기전의 완결성과 전략적 차별성을 강조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시도다.
다만, 이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생물학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약물 설계와 작용점 최적화에는 화학자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현재 합성화학 연구자들과의 활발한 공동연구를 통해, TM4SF5 기반 항암 플랫폼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 교수는 연구 인생의 후반부를 맞아, 주제를 좁히기보다 핵심 개념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TM4SF5의 다중 조절 기능을 하나의 치료 전략으로 구조화함으로써, 암 면역치료의 새로운 프레임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제 정년까지 3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TM4SF5가 두 면역세포를 모두 조절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걸 기반으로 한 면역항암제 전략이 새로운 틀로 작동할 수 있다는 걸 구조화해서 보여주는 데 집중할 생각입니다.”
암세포의 생존 알고리즘을 바꾸다, TM4SF5의 기능적 재발견
이 교수는 면역항암제 플랫폼 연구 외에도, TM4SF5의 분자적 기능과 대사 조절 메커니즘을 다룬 주요 논문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해 왔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성과로는 2019년 Cell Metabolism 게재 논문과 2024년 Cancer Communications 논문이 꼽힌다. 두 연구는 TM4SF5가 막단백질을 넘어 세포 내 에너지 흐름과 생존 전략을 조절하는 핵심 분자로 작용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며 주목받았다.
2019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TM4SF5가 리소좀 내 아르지닌 감지 센서로 작용하고, 이를 차단함으로써 간암세포의 생존을 억제할 수 있다는 새로운 기전을 제시했다. 간암세포는 외부에서 아르지닌을 공급받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 TM4SF5는 리소좀 내부에서 아르지닌을 감지하고, 이를 SLC38A9 운반체를 통해 세포질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세포질로 유입된 아르지닌은 mTOR 신호를 활성화하고 단백질 합성을 유도해 암세포의 생존과 증식에 사용된다.
연구팀은 TM4SF5 억제 화합물(TSAHC, 2009년 특허 등록된 칼콘계 화합물)을 활용해 아르지닌 운반 연결을 차단했고, 이로 인해 단백질 합성이 저해되면서 암세포를 굶겨 죽이는 전략을 구현했다. 이 교수는 이를 두고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던 리소좀 내 아르지닌 센서를 생리적 수준에서 규명하고, 생존 에너지 흐름을 차단한 기전”이라 설명했다.
이 연구는 대사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인 Cell Metabolism에 게재되었으며, MIT 사바티니 그룹이 주도해 온 아미노산 센싱 분야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연구로 평가받았다.
2024년 발표된 또 다른 연구에서는 TM4SF5가 세포 내 소기관 간 접촉을 매개해, 암세포의 에너지 대사를 조절하는 분자 수준의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특히 TM4SF5가 리소좀막에 위치한 채, 미토콘드리아 외막 단백질인 FKBP8과 결합해 두 소기관 사이에 접촉 부위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접촉을 통해 리소좀에 저장되어 있던 콜레스테롤이 미토콘드리아로 이동하게 되면, 미토콘드리아의 TCA 회로는 유지되지만 전자전달계 기능에는 결함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암세포는 포도당으로부터 에너지 생산을 미토콘드리아의 산화적호흡을 통해 정상적으로 얻지 못하게 된다. 이는 암세포가 포도당 분해 효율은 낮지만 해당 과정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와버그 효과(Warburg effect)’의 분자적 기전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로 해석된다.
또한, TM4SF5에 의해 유도되는 소기관 접촉과 콜레스테롤 수송 과정을 차단하면 암세포의 에너지 대사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함께 제시되었다. 이 교수는 “TM4SF5-콜레스테롤 상호작용을 저해하는 약물을 통해 암세포의 에너지 회로를 차단하고, 결과적으로 정상적인 대사 흐름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몇 명이 이 측면에 투입되어 연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해당 연구는 암세포 특이적 에너지 이용 전략에 대한 세포생물학적 해석을 제시하며, 대사 기반 항암 전략의 가능성을 여는 기초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연구자 이정원’의 이름으로 남은 단백질, TM4SF5
TM4SF5는 이 교수의 연구실을 20년 넘게 이끌어온 중심 타깃이자, 지금도 가장 핵심적인 연구 주제다. 하지만 최근 그가 TM4SF5를 바라보는 시선은 보다 넓은 생체 시스템의 상호작용으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연구 키워드는 바로 ‘organ crosstalk’, 즉 장기 간 상호작용이다. 간에 병변이 생겼을 때 췌장, 대장, 뇌 같은 다른 장기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병리적 연쇄 작용이 어떤 경로로 이어지는지를 TM4SF5를 통해 추적하고 있다.
이러한 확장된 시야는 실질적인 연구 협업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보라매병원 외과팀과 함께 간-췌장 간 상호작용을 분석하고 있으며, 수술장에서 확보한 조직 샘플을 통해 실제 환자 조직의 병리 연결 구조를 관찰하는 중이다. 인슐린 분비, 포도당 대사, 지방간 형성 등 다양한 병리 메커니즘이 간과 췌장을 오가며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가운데, TM4SF5가 그 흐름의 중심에 있을 가능성을 추정하고 점차 구체화시키고 있다.
이 교수는 연구의 기반을 다진 이 단백질이, 앞으로는 제자들과 후속 세대 연구자들에 의해 더 넓은 시스템 차원에서 다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TM4SF5의 병리적 역할이 간을 넘어 신경계, 대사계 전반까지 입체적으로 해석되고, 이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지를 다각도로 풀어가는 것. 그것이 그가 구상하는 연구의 다음장이다. TM4SF5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의 단백질로 표현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TM4SF5를 선택할 만큼 이 단백질은 그의 연구 인생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오랜 시간 하나의 타깃을 집요하게 파고든 그는, 이제 그 이름과 함께 불리는 연구자가 되었고, TM4SF5는 어느새 하나의 색채이자 문장이 되었다.
현재까지 TM4SF5를 중심으로 한 국내외 특허는 총 28건(국제특허 15건, 국내 13건)에 이르며, 간질환, 섬유화, 면역, 항암치료 등 다양한 응용 가능성을 확보해 왔다. 최근에는 기업과의 기술이전 협의나 연구 자문 등 산업계와의 접점을 염두에 둔 노력도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창업보다는, 그동안 축적해 온 지식과 통찰을 기반으로 연구 현장과 산업을 잇는 연결자의 역할을 그려보고 있다.
은퇴 이후 계획도 분명하다. 그는 TM4SF5 관련 연구의 전체 흐름을 정리한 종합 리뷰 논문을 집필하고자 한다. 수십 년간의 연구 결과를 하나의 통합적 서사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리뷰 논문 집필은 연구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걸어온 길에 깃발을 꽂는 일이죠. 그 길이 어디까지였는지를 보여주고, 그 위에서 다음 사람이 출발할 수 있는 좌표를 남기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이 교수에게 TM4SF5는 연구의 궤적이자 하나의 질문이었다. 이 단백질이 실제 치료 전략으로 이어질지, 혹은 병태생리 속 하나의 조각으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TM4SF5라는 이름으로 과학이라는 지도의 한 모서리에 점 하나를 남기려 한다. 언젠가 누군가 그 점을 발견해 또 다른 선을 그리고, 새로운 질문을 시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TM4SF5는 그렇게, ‘이정원’이라는 연구자의 이름 아래 기록된 단백질이자, 아직 펼쳐지지 않은 다음 지도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취재기자 / 안유정(reporter1@s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