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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인터뷰]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책임연구원 이대희 박사

항생제 없이 재조합 플라스미드를 선별하는 기술 개발


합성생물학은 관찰과 발견이 주를 이루던 생물학에 비하여 매우 분석적인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분석 기술의 발달로 생물학에 관한 많은 정보를 획득하게 된 과학자들은 이 정보를 활용하여 인간에게 유익한 생명체 제작에 나섰고, 인간의 삶을 더욱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이대희 박사를 만나 합성생물학과 그의 연구에 대해 들어보았다.



사람의 장 속 염증을 감지할 수 있는 ‘스마트 프로바이오틱스’ 개발 중
합성생물학은 생명과학의 다른 분야에 비해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연구 분야이다. 생명과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의 구성요소와 시스템을 공학적으로 설계하여 합성하거나, 이미 존재하는 생명체를 재설계하고 합성하여 활용하는 학문이다.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분야 중 가장 근원적인 융합기술을 필요로 하는 학문으로 접근 방법이나 데이터 해석 측면에서 BT, IT, NT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기술이 고도로 융합되어야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방대한 양의 유전체 정보 데이터가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석, 로보틱스 등의 기술과 접목되어 엄청난 산업적·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대희 박사는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박사 학위 과정 중 ‘벌집에서 분리한 식품용 효모의 생리적 특성을 규명하기 위한 유전체 및 생화학적 분석’으로 미생물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에 진행했던 연구는 자작나무에서 추출하는 자일리톨과 유사한 에리스리톨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벌집에서 분리한 효모가 에리스리톨을 많이 생산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유전체 분석 등을 통한 연구를 진행하던 이대희 박사는 미생물을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슴에 품었던 의문은 연구에 대한 의지로 이어졌고 2007년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본격적으로 미생물을 연구하기 위해 시스템생물학의 세계적 대가인 버나드 팔슨(Bernhard Palsson,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교수 연구실에서 3년 동안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거쳤다.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하던 당시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시스템생물학이 두각을 나타내던 시기로 미생물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규정하고, 여러 가지 오믹스 분석 방법의 종합적 해석을 통해 각각의 유전자들이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는지 본격적인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대희 박사 역시 이때 미생물의 실험실 진화( Adaptive laboratory evolution), 인실리코 모델링,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 등 시스템생물학의 핵심 요소기술을 습득하고, 관련된 다수의 연구를 수행했다. 2010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부임한 후, 바이오 분야의 다양한 국책 연구과제에 참여하면서 시스템생물학을 바탕으로 한 합성생물학 연구를 본격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대희 박사의 주요 연구 분야는 미생물을 이용하여 합성생물학의 핵심 요소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으로, 최근에는 마이크로바이옴을 합성생물학 기술로 제어하는 연구를 수행 중이다.

“현재 ‘스마트 프로바이오틱스’를 개발 중입니다. 프로바이오틱 미생물에 인간의 장내 염증을 감지할 수 있는 인공 유전자회로를 탑재하여, 염증이 감지되면 이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염증 진단이 가능합니다. 또한 염증이 감지되면 동시에 장내 염증을 완화시키거나 치료할 수 있는 물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똑똑하게 인간의 장을 튼튼히 지켜주는 미생물이 바로 스마트 프로바이오틱스입니다.”

우리의 몸에는 수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다. 사람 체중의 3~4kg이 미생물일 정도이다. 그중에서 장 속에 가장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다. 이 미생물들의 구성과 역할이 사람의 건강을 좌우하기도 한다. 국내외 많은 연구자들이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연구하고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대희 박사 역시 장내 미생물에 관심을 가지며 스마트 프로바이오틱스 연구를 시작했다. 기존에 개발하고 있던 합성생물학 기술을 활용해 장내 미생물을 제어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로 ‘항생제 없이’ 재조합 플라스미드 선별 가능한 기술 개발
이대희 박사는 스마트 프로바이오틱 미생물을 개발하는 중에 꼭 필요한 기술 중 하나인 ‘항생제 무첨가 배지에서 재조합 플라스미드 선별을 위한 영양요구성 대장균 및 이를 이용한 유용 물질 생산 방법’을 개발했다.

프로바이오틱 미생물에 염증을 감지할 수 있는 인공 유전자회로와, 염증을 완화 혹은 치료할 수 있는 물질을 생산하는 대사경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플라스미드를 이용해야 한다.
재조합 DNA 기술이 개발된 이후로 플라스미드는 생명과학, 생명공학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인 연구 재료이다. 플라스미드를 이용해서 외래의 유전자, 대사경로, 유전자회로 등을 자유자재로 새로운 미생물에 도입할 수 있게 되었다. 합성생물학이 발달하고 있는 요즘에도 플라스미드는 여전히 필수적인 연구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플라스미드가 제대로 미생물 안으로 도입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항생제를 사용해야 한다. 오랫동안 플라스미드를 선별하기 위해 사용해온 항생제는 효율적이긴 하나, 항생제 저항성 유전자가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자연 생태계의 교란을 유도할 수 있고, 특히 산업에 직접 적용되는 기술에 항생제가 사용될 경우 제품의 오염도가 높아지고 생산 단가를 매우 높여 경제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특히 스마트 프로바이오틱 미생물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장내에 정착하여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항생제에 의해 선별되는 시스템은 적용할 수가 없다.

이대희 박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합성생물학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하여 기술 개발에 나섰다.  이미 기존에 항생제를 이용하지 않고 재조합 플라스미드를 선별할 수 있는 기술들은 보고되어 있다.

특정 필수 영양성분이 있어야만 생존이 가능한 영양요구성 미생물을 이용하거나, 미생물의 생육을 억제할 수 있는 Toxin을 분해할 수 있는 Anti-toxin을 이용하는 방법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보통 1개 또는 2개 정도의 플라스미드를 선별할 수 있는 기술이며, 장시간 이용할 경우 안정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안고 있다.



무항생제 플라스미드 선별기술 국내외 특허로 출원
이대희 박사 연구팀이 사용한 기술은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고 재조합 플라스미드를 제작하고 이를 이용하여 유용 물질을 생산하는 방법으로, 장시간 이용해도 기존 기술에 비해 안정성이 매우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술은 합성생물학의 논리회로 중 이중(Double) NOT 게이트를 활용해서 항생제의 작용 기작을 모사할 수 있는 인공 유전자회로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한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가 갖는 모듈화된 성질로 인해 2개 이상의 서로 다른 플라스미드를 항생제 사용 없이 선별할 수 있게 된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간섭 기술로 항생제 저항성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시키고, 이를 다시 제2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간섭 기술로 억제시키면 2개의 플라스미드를 항생제 1개로 선별할 수 있다.

이대희 박사는 국내에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간섭 기술을 최초로 미생물에 적용하여 유용물질 생산을 증대시킨 바 있으며, 최근에 염기 편집기(Base editor), 프라임 에디터(Prime editor) 등의 진보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활용하여 합성생물학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항생제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항생제 저항성 유전자가 아닌 미생물의 생육에 필수적인 유전자의 발현을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로 억제시킨 까닭에 아주 소량의 항생제로도 2개의 플라스미드를 선별할 수 있었다.

또한 무항생제 선별 시스템 개발을 위해 미생물의 필수 유전자가 아닌 영양요구성 대장균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자연적인 돌연변이는 보고되어 있으나 이를 실험실에서 재현하여 제작된 바 없었던 D-글루타메이트 영양요구성 대장균 개발에 성공하였다.

“이 대장균을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간섭 기술로 구현한 NOT 게이트와 조합하면 무항생제 플라스미드 선별 시스템이 완성됩니다. NOT 게이트는 제3, 제4의 플라스미드에 구현 가능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아주 많은 플라스미드를 항생제 사용 없이 선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기술은 현재 국내외 특허로 출원되어 심사 중에 있다. 더불어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을 제어하는 연구의 일환으로 수행하고 있는 염증을 감지하고 치료할 수 있는 스마트 프로바이오틱 미생물 개발에 적용하여 동물 모델에서 검증하고 있다.
실제 염증을 완화시키는 성질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진 캐모마일 유래 터펜(Terpenes) 성분을 항생제 없이 생산했을 때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기술은 현재 산업적 적용 가능성을 확인 중이다. 이를 위해 미생물을 이용해 유용한 산물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는 국내 기업이 기존에 사용하던 항생제 사용 기술을 대체하여 그 효율성을 검증 중이다.




메탄자화균의 대사공학 연구 등 ‘인류에 도움 되는 연구할 것’
현재 우리나라 합성생물학 기술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합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이 부각되고 있는 듯한 양상이다.
하지만 이미 미국, 영국, 중국 등에서는 합성생물학 발전이 산업으로 연결되어 관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많은 나라가 합성생물학 관련 지원 정책과 규제를 마련하여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들 나라에 비해 다소 부진한 상황이다.

이대희 박사는 이러한 인식을 불식시키고 다양한 기관 및 사람들에게 합성생물학을 소개할 수 있는 대중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생명과학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의 멘토링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 중이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플라스틱의 생물학적 완전 분해와 온실가스의 주범중의 하나인 메탄을 이용하여 산업적으로 유용한 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메탄자화균의 대사공학 연구를 합성생물학 기술을 통해 진행 중이다.
연구 분야가 매우 도전적인 만큼 어려움도 많지만, 동료들과의 협력을 통해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고 있다.
미생물과 이들이 만들어내는 효소를 이용하여 플라스틱을 분해하고 이를 다시 유용물질로 만들어 탄소 자원을 재활용하는 연구는 산업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인류의 건강과 환경 보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합성생물학은 융·복합 학문이기 때문에 전산, 통계, 나노, 효소, 미생물 등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동료 연구자들의 협력과 지원이 있어야 연구가 가능합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합성생물학전문연구단 안에서 다른 동료 연구자들과의 활발한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늘 열정적으로 열심히 연구하는 학생, 박사후연구원분들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영감을 불어넣고, 아낌없는 지원과 격려를 해주시는 선배 연구자분들에게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대희 박사는 앞으로도 자신이 개발한 합성생물학 기술들이 국민의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늘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취재기자 / 박아영(reporter3@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20년 9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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