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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인터뷰] 중앙대학교 화학과 성재영 교수님

생명현상 수리화학적 이해의 길을 개척하다
유전자 발현을 지배하는 화학요동법칙 최초 발견

중앙대학교 화학과 성재영 교수님 인터뷰





모든 생명 기능들은 세포 내 유전자에 저장된 정보를 mRNA와 단백질로 발현하고 이들을 소멸시키는 화학반응들을 통해 구현된다. 그런데 이 화학반응들이 근본적으로 불확실성을 내재한 확률과정이기 때문에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세포들도 mRNA와 단백질 농도가 세포마다 크게 달라 세포의 성질과 기능이 다양할 수 있다. 그동안은 이 현상을 물리화학적 모델로 설명하거나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지난해 중앙대학교 성재영 교수 연구팀이 세포 내에서 생성되고 소멸되는 분자들의 농도 요동을 지배하는 법칙인 ‘화학요동법칙’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설명되지 않던 다양한 실험 결과를 설명함으로써 생명현상의 신비를 물리화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생명현상을 수학적 연역과 물리화학적 모델을 사용해 정량적으로 설명•예측하는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과학사상 전례가 없는 성과로 볼 수 있다.





 


기존 접근법의 한계 극복에 도전
생명체가 무질서한 화학반응과정들로부터 생명기능 개발과 유지에 필요한 질서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정확하게 구현하는지는 자연과학 분야의 가장 중요한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생명체는 유전자에 저장된 정보를 발현하는 유전자 발현과정을 통해 단백질을 만들어 내고 이들이 이루는 화학반응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생명 기능을 구현해 낸다. 따라서 각종 생명체의 유전정보에 대한 연구가 많은 관심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유전자 발현과정은 수많은 화학반응들로 구성된 복잡한 확률적 과정이다. 화학반응들이 근본적으로 불확실성을 내포하는 확률과정이기 때문에 세포들은 유전자 발현량을 완벽하게 조절하지 못한다. 따라서 유전자가 정확히 같은 세포들이라 할지라도 유전자 발현으로 생성되는 mRNA와 단백질의 개수는 세포마다 다른데, 이는 유전자가 같은 세포들도 다양한 기능과 성질을 보이게 되는 원인이 된다.

생명체들은 세포들의 유전자 발현량을 환경에 따라 바꿔가며 적응을 하고, 주어진 환경에서는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유전자 발현량을 일정 범위 내로 조절한다. 그러나 조절에 실패할 경우 환경적응과 생명기능 유지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21세기 들어 생명현상을 세포 내 화학반응 네트워크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네트워크 생물학에서는 유전자 발현과정을 세포가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정확하게 조절하는지에 대한 실험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단일분자 실험기술이 발전하면서 유전자 발현으로 나타나는 mRNA와 단백질의 정량적인 측정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유전자 공학기술과 합성생물학의 발달로 살아있는 세포 내 유전자와 유전자 발현과정을 여러 가지로 바꿔가며 이 변화가 어떻게 세포의 유전자 발현 조절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죠. 하지만 유전자 발현과정을 구성하는 화학반응속도를 정확하게 기술하는 모델이나 이론이 없어 이 실험 결과들을 정량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져 왔습니다.”

현재 시스템 생물학 분야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이론은 194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던 저명한 물리학자 파울리가 개발한 마스터 방정식 접근법을 화학반응과정에 적용한 것이다. 이 접근법은 1901년 첫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반트호프가 제안한 화학반응속도 모델에 기초하고 있다. 반트호프의 화학반응속도론에서는 기본적으로 개별 화학반응의 속도계수가 시간이나 반응용기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 상수라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과정은 속도계수가 다양한 변수에 의존해 세포마다 다르고 시간에 따라서도 요동치는 경우가 많다.
유전자 발현과정의 경우 유전자와 효소들의 분자 구조, 유전자 발현 조절 상태, 유전자 복사체 개수, 세포 주기, 세포 영양 상태 등 수많은 환경변수에 따라 유전자 발현과정을 이루는 화학반응의 속도계수가 달라지는데, 이 세포 환경변수 값이 세포마다 다르고 시간에 따라 요동치기 때문에 반응속도계수 역시 그러하게 된다. 세포 내 화학반응이 아닌 경우에도 분자 생성과 소멸과정의 속도를 간단한 속도상수 개념에 기초해 설명할 수 없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면 분자의 생존시간 확률분포가 지수함수가 아닌 경우는 흔히 있는데, 이런 경우 기존 화학반응속도론이나 마스터 방정식으로는 정확한 기술이 불가능하다.

이외에도 많은 경우 생체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개별 반응과정이 다단계 반응이거나 다채널 과정인데 이런 경우 역시 간단한 속도 상수 개념에 기초해서 반응속도를 정확하게 기술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세포 내 화학적 요동을 정량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기존 접근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반응 모델과 이론적 방법론의 개발이 요구되었고, 이러한 가운데 발표된 성재영 교수의 새로운 세포 내 화학반응속도 이론은 시스템 생물학 분야 그리고 정량생물학 분야의 실험 해석에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수학적 연역 통해 화학요동법칙 최초 발견
성재영 교수는 2000년대 초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화학과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치던 당시 같은 대학 물리학과 Alexander van Oudenaarden 교수의 논문을 읽고 생명현상을 세포 내 화학반응네트워크 차원에서 정량적으로 이해하려는 시스템 생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이 분야에서 주로 사용하는 모델과 방법론이 플라스크와 같이 균일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에 대해서는 정확한 결과를 줄 수 있지만, 세포처럼 불균일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2003년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이듬해 중앙대학교 화학과에 조교수로 부임한 이후 이 연구를 본격적으로 수행한 결과 2005년 단일 효소가 특정 모델의 반응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간단한 경우에 대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결과를 세포환경과 같이 정확하게 모델하기 어려운 복잡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다단계 효소 반응으로 확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 이후 7여 년 동안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으로 돌아와 안식년을 보내던 중 2012년 3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첫 번째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 연구력을 이 한 과제에 집중한 결과 2014년과 2015년, 세포 내 화학반응을 효과적이면서도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과 수학적 방법론들을 유전자 발현과정에 적용, 학계에 처음 발표하게 되었죠.
하지만 이 초기 모델과 방법론은 mRNA와 단백질의 소멸과정이 매우 단순한 일차 반응과정인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성재영 교수 연구팀은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포 내 생성 및 소멸 반응 과정의 메커니즘과 확률적 성질이 복잡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성립하는 화학요동법칙을 기존 미분방정식들에 기초하지 않는 새로운 수학적 연역을 사용해 엄밀하게 유도했다.
즉, 복잡한 확률과정을 거쳐 생성 및 소멸되는 분자들의 농도 평균과 요동이 만족하는 화학요동법칙을 수학적 연역을 통해 최초로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를 유전자 발현과정에 적용해 유전자가 같은 세포들의 mRNA 및 단백질 개수 조절 능력이 유전자 종류나 화학적 환경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정도를 측정한 다양한 실험 결과들을 일관되게 설명하고, 이 과정에서 유전자 발현과정에 대한 새로운 물리화학적 모델을 구축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 백년 간 널리 받아들여진 반트호프의 화학반응속도론과 파울리의 마스터 방정식 접근법의 기본 가정들이 세포 내 화학반응에 대해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대부분의 생체 고분자들은 복잡한 화학반응 네트워크를 통해 생성되며 생존시간 확률분포가 간단한 지수함수가 아닙니다. 이번 성과로 얻어진 화학요동법칙은 임의의 생성 및 소멸과정을 거치는 생체 고분자들 세포 내 개수의 평균과 분산의 시간에 따른 변화가 일반적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이 결과는 기존 미분방정식 접근법들에 기초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것으로 새로운 수학적 방법을 통해 유도되었습니다. 이번 논문에서는 이러한 장점을 부각시켜 여러 실험그룹에서 다양한 유전자 조절 네크워크에 대해 얻은 세포의 mRNA 농도 조절 능력 측정 결과를 화학요동법칙을 사용해 정량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연구팀은 더 나아가 mRNA의 생존시간 분포가 세포의 mRNA 농도 조절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예측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이 예측이 정확한 전산모사 결과와 일치함도 보여주었다. 살아있는 세포 실험 결과에 대한 이와 같은 정량적 설명과 예측은 과학사상 전례가 없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의학적 치료방법 개발 가능성 열어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리더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되었다. 리더연구자지원사업은 미래의 독자적 과학기술과 신기술 개발을 위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연구자의 심화연구를 집중 지원하는 사업이다. 성재영 교수와 함께 중앙대학교 윤상운 교수와 김지현 교수, 토론토대학 Philip M. Kim 교수가 힘을 모았다.
연구성과는 순수이론 논문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네이쳐 저널 그룹의 ‘네이쳐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에 2018년 1월 19일 게재되며 세계 과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연구 결과는 2016년 상반기에 얻어졌고, 최초 논문 투고는 2016년 9월에 이뤄졌습니다. 이 논문이 새로운 개념과 모델 그리고 수학적 방법론을 제시하고, 실험 결과 해석과 예측까지 포함하다 보니 길이가 매우 긴 논문이 되었죠. 수학자, 시스템 생물학자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심사위원 4명이 심사를 맡았고, 1년 넘게 공격적이고 엄밀한 심사를 받는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연구에서 제안하는 세포 화학반응네트워크 모델 방법이 오랜 기간 사용되어 온 반응속도론적 네트워크 모델방법과 많이 다르다보니 새로운 모델방법에 대한 경계심, 의구심이 들거나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죠. 다행히 모든 심사자들이 출판에 최종 동의하면서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연구팀의 이번 연구 결과는 생명현상을 수학적 연역과 물리화학적 모델을 사용해 정량적으로 설명•예측하는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큰 가치를 가진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명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정확하게 다양한 생명 기능들을 구현하고 조절하는지를 물리화학적으로 이해하고, 세포의 생명기능 조절 능력을 회복시켜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의학적 방법을 제시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화학요동법칙은 세포 내 화학반응뿐 아니라 일반적인 생성·소멸과정에도 적용될 수 있는 법칙인 만큼 자연과학을 비롯해 약동력학, 전염병학, 경제학, 사회과학 등의 타학문 분야 발전에도 활용 가능하다.

리더연구자지원사업 1단계가 이론 위주의 연구였다면, 이후 연구는 다양한 생명기능 조절 능력 실험을 수행해 의학적으로 중요성을 가지는 세포반응네트워트를 밝혀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세포 내에서 단백질의 농도 요동이 암세포의 운명과 연관되어 있는지 설명하고자 연구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항암 기작, 암세포 전이, 면역 등 연구 범위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정량적 연구 성과 평가방식 변화해야
연구를 수행하면서 많은 연구자들이 기로에 서고는 한다. 연구비를 조금 더 쉽게 지원받고,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 과제를 할 것인가,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요하거나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의미 있는 연구에 뛰어들 것인가. 국내에서 후자를 선택했을 시 막대한 위험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국내 연구자들이 후자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이에 반해 성재영 교수의 세포 내 화학반응 동력학 연구는 백년 넘게 지속되어온 반응속도모델의 틀을 넘어 새로운 모델과 방법론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서구 학문을 추격하는 연구가 대부분인 한국에서 꽃을 피워내야 하는 일이었던 만큼 사실 그 과정이 녹록치는 않았다.
연구의 내용 평가보다는 논문 수와 임팩트 팩트 중심의 정량평가가 중요시되는 국내 연구환경 속에서 오랜 시간 한 가지에 파고들며 일궈 낸 성재영 교수의 연구성과가 그 완성성을 온전히 인정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전혀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며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적 연구였던 만큼 의구심 섞인 시선과 기존 모델을 고수하는 연구자들의 저항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논문을 통과하기까지의 과정이 어려울 뿐 아니라 연구비 지원의 어려움도 따랐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 최소의 연구비로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을 거듭한 결과 성재영 교수가 이끄는 세포화학동력학 연구단은 시스템 생물학과 정량생물학 이론 분야에서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고, 연구 성과도 국내외 연구자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우리 세포화학동력학 연구단에 지난 1단계 연구기간 동안 모이게 된 연구교수들 모두 국제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고, 이론화학, 단일분자 생물리학, 세포 생물학, 기계학습 등 필요한 분야의 연구 인력들이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어 훌륭한 맨 파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연구진 모두 기존의 프레임을 넘어서는, 과학계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연구에 임하고 있죠. 다만, 부족한 연구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저희 세포화학동력학 연구단 소속 교수, 학생들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과 함께 지원환경에 대한 아쉬움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연구진들이 연구에만 집중하며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구축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연구 인프라와 연구비가 지원되면 좋겠습니다. 저희를 포함하는 우리나라 모든 연구 인력들이 앞으로 보다 중요하고 새로운 문제에 쉽게 도전할 수 있도록 연구 환경과 연구 성과 평가제도가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재영 교수는 앞으로도 복잡한 생명현상을 구현하는 세포 반응 네트워크를 물리화학적으로 이해하고 조절해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의학적 방법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규모가 커진 세포화학동력학 연구단의 정상적 운영에 필요한 연구비를 빠른 시간 내에 조달하고 동시에 해외 관련 분야 최상위 연구단과의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구축해 세포화학동력학 연구단을 국제적으로도 최고 경쟁력을 가진 연구센터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렇듯 세포화학동력학 연구단은 현재 열악한 연구 여건에도 불구하고 생명현상의 근본적 이해를 달성하고 의·약학 산업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기 위해 꾸준히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아직 신생학문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며 불굴의 의지로 놀라운 성과를 거두어 내고 있는 과학자, 성재영 교수의 미래가 기대된다. 






취재기자 / 안유정(reporter1@s21.co.kr)



<이 기사는 사이언스21 매거진 2019년 3월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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